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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Mar 18. 2023

단발좌를 꿈꾸다

역시.... 무리인가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껏 계속 긴 머리를 지속해 왔다. 자고로 여자에겐 머리빨이 화장빨만큼 중요한 법! 긴 머리만 해도 여자로 보이니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딸들에게 머리칼을 뜯길지언정 절대 사수한 나의 긴 머리를 이틀 전 단발로 싹둑 자르고 왔는데 그 사연을 한 번 들어봐 주시길.

  등원길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흰 목련 꽃 봉오리 때문에 일어난 사달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봄기운으로 마른 나뭇가지에 꽃 봉오리가 맺히니 참 아름다웠다. 긴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고결한 꽃. 마치 지난 시절 육아로 반송장이 되어 지내온 나와 꽃이 동일 시 되면서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딸들을 등원시키자마자 동네 미용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긴 머리에 세팅파마로 변화를 줄 요량이었는데 불쑥 단발로 잘라달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용사는 너무 많이 자르는 것이 아니냐 물었는데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단발좌를 꿈꿨다. 상콤하게 단발을 하고 C컬로 머리끝을 말면 정말 예쁠 거란 단꿈에 젖었다.

  그렇게 싹둑 한 줌의 머리칼이 잘려나가는데 거울을 보곤 아차 싶었다. 고준희를 생각했는데 최양락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내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자 미용사도 눈치를 살폈다.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아직 C컬을 말기전이니 기다려보자고 스스로 달랬다. 한동안 이어진 세팅파마가 끝나고 샴푸 후 다시 거울 앞에 앉았다. 젖은 머리칼이 마를수록 애간장이 탔다. 이젠 빵떡얼굴에 버섯갓을 뒤집어쓴 얼큰이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나 단발은 작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해야 어울리는데 심술 맞은 아줌마가 주제파악을 못해 이 사단이 벌어졌다고. 내가 풀이 죽어 보이자 미용사는 어려 보인다는 빈말을 하며 기분을 풀어주려 했지만 누가 봐도 낼모레 마흔 아줌마가 망연자실하게 앉아있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원이를 데리러 가니 사회성이 뛰어난 첫째 딸이 엄마 예쁘다며 따봉을 해주었다. 기분이 좀 풀린 채 둘째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진이가 벙찐 표정으로 날 한참 보더니 엄마 머리가 이상해... 아직 사회화가 덜 된 둘째는 참으로 솔직했다.

  집에서 울상으로 병히를 기다렸다. 역시나 사회화가 덜 된 그의 반응.... 날 보자마자 박장대소하며 깔깔 웃었다. 에휴. 모처럼 마음먹고 한 변신이 큰 상처가 되어 시무룩해져 있는데 병히가,

"볼수록 어디서 본 거 같단 말이야.... 흠 만화 캐릭터인데..."

"안 궁금하다고. 알고 싶지 않다고!"

"아! 드디어 생각났다!"

병히가 낄낄거리며 이 그림을 찾아 보여줬다. 영심이 엄마도 아닌 아빠란다. 화는 나는데 너무 닮아서 나도 빵 터졌다. 싱크로율 백 프로.... 그날 나는 실실 웃다가 꺼이꺼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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