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시간 동안 강사에게 연수를 받았다. 여전히 혼자 차를 몰기엔 두려워 남편에게 연수를 부탁했다. 병히는 부부사이에 연수를 받는 건 부부싸움을 각오해야 된다며 서너 번 거절하다 계속 조르니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병히는 자신은 오래 살고 싶고 타인에게 폐가 될 수 없다며 브레이크 보조봉까지 준비해 비장하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주행이 시작됐다.
"야 야 차선 봐 차선!"
병히는 무서운지 소리를 질러댔다. 내 옆으로 차만 지나가면 으악! 미쳤어! 를 외쳤다. 우회전을 할 때 핸들을 좀 버벅 거렸는데 뒤차에 받히고 싶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차선이 넘어갔다고 버럭 화를 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옆에 앉아 발광하니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운전을 계속할 수가 없어 그만 차를 세우고 싶다고 하니 병히는 그런 정신력으로 무슨 운전이냐고 멈추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고심하다 이거라도 누르고 가자며 비상등을 켰다. 위급 상황이거나 고마울 때 잠깐 누르는 게 비상 깜빡이 아니었나? 의아해 물으니 지금 우리 상황이 비상상태라며 이러면 다른 차들이 알아서 피해 줄 거라고 비상등을 누르고서야 병히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유턴이 중요하다고 유턴 차선으로 변경하라는데 긴장해서 듣지 못했다. 그냥 계속 직진을 하니 또 유턴자리를 모르냐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운전 못하는 내 죄로구나 찍소리도 못하고 욕받이가 되어 험한 소리를 견뎠다. 좌회전 신호를 받고 점선을 따라 가는데 병히가
"으악!! 차선 안 봐 너 지금 맞은편 서있는 차랑 부딪힐뻔했어!! 차선 넘어갔다고!"
눈을 부라리며 성을 냈다. 이 새끼 이따가 두고 보자. 화를 꾹 참았다. 한 시간 동안의 지옥 같은 연수가 끝이 보였다. 아파트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는데 차단봉 코앞에서 겨우 멈추자
"차단봉을 부술 뻔했잖아. 그리고 브레이크를 왜 이렇게 늦게 밟아! 버튼 어떻게 누르려고 이렇게 멀리 세웠어??"
시댁이라 차량 등록이 안되어 경비실에 인터폰을 걸어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 차문을 열고 내렸다. 뒤차를 힐끔 봤는데 운전자가 좋은 구경에 웃고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버벅거리다 겨우 차를 댔다.
병히는 실실 웃으며 다음 연수땐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다.. 음.. 연수?! 평소 마누라의 존엄에 꼼짝 못 하던 인간이 연수 때 큰소리치니 좋았구나. 게다가 내가 사고 날까 봐 화를 억누르며 대꾸하지 않았더니 기가 산 꼴이 가소로웠다. 내가 대답 없이 냉랭한 표정으로 째려보니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된 병히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래서 부부끼리 차량연수는 금지구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무시했다가 기분만 팍 상했다.
혹여나 도로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주행하는 정신 나간 차량이 있다면 손 한번 흔들어주세요. 그 안에 빡친 저와 샤우팅하는 병히가 타고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