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이라 하니 뭐 엄청난 걸 바라는 거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살며 겪은 최악의 대접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본다.
한때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말이 좀 많았지만 성격이 호탕하고 시원시원해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 친구가 일산에서 신접살림을 차려 친구를 보러 두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갔다. 친구는 집 근처에 유명 브런치카페가 있다며 으스대며 나를 데리고 갔다. 뭐 평범한 브런치카페였다. 브런치보다 친구를 보러 온 것이니 상관은 없었다. 친구는 제일 비싼 메뉴를 척척 주문했고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었다. 일어나려는데 친구가 빌지를 쳐다도 안 보고 벌떡 일어나 쫓기듯 밖으로 나갔다. 돈 내는걸 못 봤는데 뭐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나 역시 돈을 낼 생각은 없었기에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직원이 우릴 쫓아오며
"계산하셔야죠!"
소리를 질러 친구와 멈춰 섰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친구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뭔지 혼란스러웠다. 혐오하는 먹튀를 할 뻔한 것이다. 그 친구는 내가 당연히 계산을 할 것이라 생각한 걸까? 그녀가 날 만만한 호구로 취급하는 걸 알아차려 버렸다.
이번에 소개할 친구도 내가 한 시간 반 버스를 타고 만나러 갔다. 버스터미널에 백화점도 있는 도시였는데 친구에게 마중을 나오는지 물었다. 친구는 터미널은 자기 집에서 차로 이십 분 거리라며 집 근처 칼국수 맛집이 있다고 은근히 거절의사를 내비쳤다. 나더러 또 이십 분 택시를 타고 지네 집 근처로 오라는 소리였다. 난 부러 칼국수를 싫어한다고 터미널로 나오라고 했다. 친구는 떨떠름하게 알겠다고 하더니 억지로 마중을 나왔다. 그녀는 함께 갈 곳도 알아보지도 않고 백화점 푸드코트로 날 이끌었다.
"야, 너 먹을 거 먼저 사와. 너 오면 나도 사 올게."
어리둥절했다. 지난 몇 년을 백수였던 친구라 만날 때마다 밥은 늘 내가 샀는데 친구를 보러 온 내게 칠천 원짜리 밥 한 끼도 안 사주니 굉장히 섭섭했다. 남편 벌이가 시원찮았으면 이해했겠지만 친구는 예물로 받은 다이아몬드 풀세트를 착용하고 비싼 명품백까지 들고 나왔다. 에코백을 든 내 손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자랑은 하고 싶은데 돈은 쓰기 싫은 심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널 보러 여길 또 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보니 난 그들에게 늘 배려하고 양보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려 했다. 내가 주는 걸 받기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이런 푸대접이라니. 내가 실망하고 선을 긋자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결혼 후 내가 이동이 어려워지자 푸대접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이어졌다. 한 친구는 내가 선물하기로 삼만 원짜리 기프티콘을 보내면 늘 만 원짜리로 돌려줬다. 몇 년을 그랬는데 솔직히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기를 낳고 오만 원짜리 배냇저고리를 선물하기로 보냈는데 몇 달 뒤 내가 출산하자 친구는 이만 원짜리 배냇저고리를 생색내며 보냈다. 푸대접은 나를 넘어 내 아이로까지 이어졌다.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해 그 친구의 생일을 넘겼다.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았다. 축하인사도 생략했다. 그런데 내 생일에 만 원짜리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며 축하인사를 전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속이 좁았구나. 옹졸했다고 자책하며 돌아오는 친구의 생일에 삼만 원짜리 기프티콘을 선물하기로 보냈다. 그리고 작년 내 생일에 그 친구는 선물은 물론이고 축하 인사조차 없었다. 진짜 계산적인 건 내가 아닌 그 친구였다. 하기야 만원이 삼만 원이 되고 이만 원이 오만 원이 되는 기적이 있으니 그리 꾸역꾸역 내 생일을 챙겼다고.
내가 돈이 많아서 돈을 더 쓰고 시간이 여유로워 시간을 버리며 그들을 보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가 좋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더는 그 누구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친구..... 이대로 없어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