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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28. 2022

오물 속 보석

춘화 편

   지속이라고 매번 똥들만 상대하고 살아온 건 아니었다. 춘화를 보면 그녀의 이름처럼 봄꽃이 떠올랐다. 매섭고 차디찬 겨울바람을 버티고 견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봄날의 꽃.

  지속은 춘화를 대학원 소설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삐쩍 마른 몸을 가리려 겹겹이 티셔츠와 남방을 입고 체형보다 큰 야상으로 몸을 똘똘 감싼 단발머리의 춘화는 독자를 만나러 연변에서 서울로 왔다고 했다. 조선족 특유의 말투가 말어미에 묻어있었다. 식당에서 조선족 직원을 봤던 지속은 대학원에서 만난 춘화가 신기했다. 지속은 속으로 그럼 쟨 중국인이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할 텐데 소설을 쓴다고? 딱 거기까지였다. 지속은 춘화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속이 춘화와 같은 날 합평을 받게 되었다. 소설을 발표하는 날로 합평이란 미명하에 남의 글을 맘껏 까고 짓밟는 것이 허용된 날이었다. 그동안의 합평 분위기로 보아 친분이 있는 사람의 소설은 칭찬을 거하게 하고 조금 깠으며 평소 싫어한 사람이면 소설을 빌미로 멘털이 나가도록 후들겨팼다. 특히 진정성이 없다는 말로 소설을 깠는데 지속은 어이가 없었다. 진정성을 찾고 싶으면 일기를 읽으라고. 허구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어 소설을 보는데 왜 자꾸 진정성을 찾는지 헛소리를 하는 자의 이마에  박치기를 해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심리 난타전 무대에 얻어맞기 위해 지속과 춘화가 함께 오른 것이었다.

  한편으론 지속은 다행이다 싶었다. 상대가 문창과 성골이었다면 기세에 눌려 쭈구리 버전이 되었겠지만 춘화는 연변에서 오지 않았는가. 적어도 춘화보단 자신의 소설이 우월할 것이라고 지속은 생각했다. 그리고 늘 어긋나는 지속의 예상.

  춘화의 소설은 훌륭했다. 지속은 춘화의 발표 소설을 읽으며 문장이 살아서 통통 튀어오른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래서 춘화가 궁금해졌다. 가만 지켜보니 사람들 눈치를 살피느라 춘화가 바빠 보였고 지속은 편하게 다가가고 싶어 질문보단 춘화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  

  인사말로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지속의 말에 바로 언제 어디서 볼까요? 저는 내일도 괜찮아요. 언니는 뭘 좋아해요? 빛나는 눈동자로 묻던 춘화. 솔직하고 꾸밈없는 춘화 덕에 지속은 더 이상 빈말을 할 수 없었다. 한국인의 겉치레와 인사말에 젖었던 지속은 춘화가 언니 고향집에 한번 놀러 갈게요 하는 말을 흘려들었다. 설마 진짜 오겠어? 춘화는 정말 고속버스를 타고 시골 지속의 고향에 놀러 왔다. 지속이 키우던 믹스견 쫑이를 보여준 유일한 사람으로 지속은 춘화에게 감동했다. 지속이 대학원 수료 후 원룸을 구해 이사할 때도 춘화는 흔쾌히 와주었다. 여동생이 없던 지속은 춘화가 진짜 동생 같았다.

  이사를 도와준 춘화가 고마워 같이 중식당에 갔는데 동전 물티슈에 물을 붓자 마치 꽃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춘화가 말릴 새도 없이 젓가락으로 집어 날름 입안에 넣고 씹는 것이 아닌가! 혹여나 창피한 춘화가 꿀꺽 삼켜 배탈이 날까 걱정하는데 웃으며 빵이 아니었네요 하며 도로 뱉었다. 지속은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본인은 후에 부끄러웠다고 했지만 지속은 그 모습이 귀여웠다. 춘화는 지속의 패션 센스도 늘 칭찬했는데 지속은 그 점은 동의할 수 없었다. 시골 촌년에 백화점에서 티 한 장 사 본 적 없는 패션 꽝이구만. 연변에서 온 춘화에게만 그런 칭찬을 듣는 것이 내심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웃겼다.

  춘화와 소설을 이야기할 때 지속은 행복했다. 무엇보다 오물 속을 구르던 지속의 손아귀에 우연히 잡힌 빛나는 보석처럼 특별한 춘화와 우정을 나누는 게 기뻤다. 지속은 유명 작가가 된 춘화의 뒤에서 박수를 치며 꽃다발을 안겨주는 좋은 언니가 되어주고 싶었다.  지속의 심기를 건드려 발끈하게 만들던 이들과 달리 신기하게도 춘화 앞에선 지속도 좋은 사람을 연기할 수 있었다.

  여전히 소설의 열정이 꺼지지 않는 춘화를 지켜보며 호감은 존경으로 바뀌었고 조만간 그녀의 소설집이 세상에 나온다. 지속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가 된 말라깽이 소설가 지망생 조선족 여자아이. 지속은 춘화가 만나러 온 첫 번째 독자가 되어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봄꽃 춘화. 곧 만개할 그녀의 삶을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맺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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