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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20. 2022

분노 조절자의 자기 객관화

냉혹한 사회 편

  지속은 신춘문예 등단 소설이 정통 클래식이라면 자신의 글은 오일장의 각설이 품바 속 흥을 돋우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의 쇳소리라고 생각했다. 서너 번 신춘문예에 고배를 마시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다른 차선책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웹소설, 지속은 순위가 높은 웹소설 몇 편을 대충 훑어보곤 자신도 제2의 방울 마마가 되어 흥겨운 방울을 흔들어 재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준비도 없이 로맨틱 장르로 웹소설 게재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기대된다는 댓글이 한두 개 달리면서 성급한 지속은 이미 방울 마마가 된 듯, 자신의 웹소설 드라마화를 위한 배우들의 캐스팅 라인업까지 세웠다. 행복한 상상도 잠시, 조회수가 저조했고 관심작가 등록수도 제자리였다. 지속은 뭐가 문제인지 높은 순위의 로맨스 장르의 웹소설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원나잇, 존잘남과의 연애, 직장상사와의 짜릿한 일탈 등 지속이 전혀 추구하는 소재들이 아니었다. 일단 지속은 존잘남과의 연애가 뭔지 몰랐다. 그런 사람을 현실에서 본 적도 없었고 지속에게 막상 그런 남자가 다가왔다면 지속의 장기를 털기 위해 접근했거나 사이비 종교의 포교 활동이라 여겨 도망갔을 터였다. 고심 끝에 지속은 웹소설 7화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그와의 뜨거운 밤'

제목만 이럴 뿐 내용은 남주, 여주가 포장마차에게 뜨거운 꼬치 어묵과 국물을 마시는 내용이었다.

8화의 제목은.

'흠뻑 젖은 그녀'

제목만 이럴 뿐 내용은 여주가 우산 없이 소낙비를 맞아 감기에 걸리는 내용이었다.

  조회수가 엄청났다. 처음 보는 숫자로 지속은 자신의 비책이 통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스무 명이 넘었던 관심작가 수가 단 2회 만에 4명으로 줄었다. 네 명 중 한 명은 지속 자신이고, 한 명은 종부였으며 나머지 둘은 지속의 아빠, 엄마였다. 지속은 고개를 떨구었다. 지속은 자신이 독자를 기만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름 풋풋하고 청량하게 전개되었던 그녀의 웹소설은 내용과는 다른 저질 제목으로 외면을 받았다. 지속은 게재했던 웹소설을 모두 내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지속은 생각했다. 나는 내 글이 재밌는데 왜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을까. 누구든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지속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각설이 품바엔 오직 흥이라고. 자신이 독자의 흥을 신명 나게 돋우지 못했기에 이 모양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지속은 각설이 분장을 하고 품바 춤을 춘다. 깽깽깽 양은 냄비를 신나게 두드린다.

  당신이 나와 같이 어깨춤을 춰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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