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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l 13. 2022

쪼잔함의 역사

유전이었다 편

  지속은 속 좁고 쪼잔한 찌질이었다. 그렇기에 작은 일에도 늘 화가 많았고 쉽게 분노했다. 그 찌질함은 사회생활은 물론 결혼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니 쉬이 간과할 문제는 아니었다.  지속은 자신의 쪼잔함이 어디서 왔는가 그 시작에 대해 지금부터 파헤쳐 볼 예정이다. 깊게 팔 필요도 없다. 지속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빠와 판박이란 걸.

  봉기는 육 남매 중 다섯째로 6살까지 머니 젖을 먹고 자란 사내아이였다. 열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십 대 시절 그의 가슴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가난한 형편에 중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냉혹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배운 게 없으니 오직 몸 쓰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 버스 앞유리창을 교체하는 일을 시작한 봉기는 지랄 맞은 사수 때문에 한 달 만에 일을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결국 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여러 작업장을 전전하며 딱히 기술도 없는 노가다꾼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고향 친구와 동업으로 설비사업을 시작했는데 잘될 리가 있나. 빚만 지고 사업은 쫑났다. 어린 시절 지속은 자리를 못 잡는 아빠 때문에 초등학교 6년 동안 11번의 이사를 했다.

  자, 대략적인 봉기의 소개가 끝났으니 이제 그의 쪼잔함을 알아보자.  하루는 아빠가 집에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어린 지속이 무슨 일인지 묻자,

"내가 아껴 먹는 사과를 종진이 새끼가 두 개씩 앉은자리에서 묻지도 않고 먹잖아. 짜증 나게."

지속은 그때의 황당함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아빠 나이가 마흔셋이었나? 그럴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가. 그때의 지속은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먹지 말란 소리도 못하고 그 아저씨가 어쨌든 두 개를 먹을 때까지 부글거리는 분노를 참고 지켜봤다는 거 아닌가. 염치없는 아저씨 때문에 화가 난 아빠를 지속은 백번 이해했다.

  환갑을 맞은 아빠의 생일잔치를 친척들을 초대해 조촐하게 치렀는데 집에 들어선 아빠의 표정이 어둡고 안 좋아 보여 왜 그러냐 물었더니, 아빠는 형들 환갑 때 50만 원씩 축의를 했는데 형들이 30만 원만 줬다며 누나만 받은 금액대로 줬다고 씩씩거렸다. 지속은 큰아빠들이 한참 아들 딸 시집 장가로 돈 들어갈 때가 많아서 그런 걸 테니 맘 상하지 마시라 위로를 했는데 훗날 지속이 결혼식 축의를 받아보니 아빠가 왜 그리 섭섭해했는지 또다시 백번 이해했다.

   대머리인 봉기는 넓고 시원한 이마 때문에 언뜻 사람 좋은 인상을 줬으나 실상은 쫌생이 었다. 중식을 시킬 때 요리를 사주는 일이 없었다. 짜장 아니면 짬뽕 딱 거기까지였고 지속이 탕수육을 시켜달라 말하면 못 들은 척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지속 생애 아빠가 처음으로 탕수육을 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결혼 후 원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으레 짬뽕이나 먹어야지 배달 봉지를 풀어보니 탕수육이 있어 지속은 몹시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래. 간혹 간짜장까진 허락한 아빠가 임신한 딸을 위해 탕수육을 주문한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고 진심으로 지속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독한 짠돌이 봉기는 지속이 옷을 사달라 하면 자기 옷을 줄여 입으라고 했고 치킨을 시켜달라 하면 엄마더러 백숙을 끓이라 했으며 엄마의 생일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나가면 뭐라도 사들고 들어와야 하니 붙박이로 있었다)

  그럼에도 지속은 구질구질 쪼잔한 짠돌이 봉기를 사랑했다. 도대체 왜 그를 사랑하는지 이유를   없었다. 아, 어린시절 기억 때문인가? 봉기는 퇴근하면 거칠한 수염이 솟아오른 턱으로 지속의 볼을 비비고 안주머니에 넣어둔 빼빼로를 손에 쥐어줬다. 어린 지속은 아빠가 아닌 아빠 주머니 속 빼빼로를 종일 기다렸는데 그래서 아빠가 집에 오면 신나서 달려가 안겼다. 그때 아빠의 옷 섬에서 나던 땀냄새와 담배냄새를 지속은 지금도 기억하고 . 차가운 바깥공기가 묻어있는 아빠 냄새, 아빠의 품. 지속의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스러운 아빠가 자식 사랑은 아낌없이 했다는 걸 알아서가 아닐까. 

  어느날 엄마가 대학원 입학을 앞둔 지속을 두고 이런 말을 해줬다.

"너희 아빠 꿈이 소설가였는데 그래서 네가 문예창작과를 간다니 좋아했어. 못 이룬 자기 꿈을 딸이 이뤄줄 거라고."

  지속은 봉기를 닮아 쪼잔하고 질했다. 지속은 봉기를 닮아 소설가를 꿈꿨다. 그리고 그를 닮아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지속은 글을 쓴다, 뭐가 돼도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아빠와 자신의 꿈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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