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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l 14. 2022

변심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건 다 변해 편

  지속이 사랑한 유일한 남자 병히가 결혼 후 변했듯 지속이 좋아하면 그게 뭐든 누구든 변했다. 그래서 지속은 자신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변하게 만든 건 정말 지속이었을까.

  요가는 지속의 유일한 취미로 힐링 그 자체였다. 요가 학원이 오픈한지 두 달 만에 회원이 된 지속은 초창기 멤버였다. 원장님은 항상 인센트를 밝혀 내부를 향기롭게 했으며 수업이 끝나면 따뜻한 차를 한잔씩 따라주어 수업 후 20분 남짓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일 울기만 하는 원이를 보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기뻤다. 초창기 멤버 중엔 순심이 언니도 있었는데 푼수였다. 원장님에게 자꾸 살이 쪘다고 관리 좀 하라고 하질 않나. 지속에겐 이목구비는 썩 괜찮은데 얼굴이 크다고 했다. 지속은 태어나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얼굴이 크다는 소리를 처음 들어봐 제법 당황했다.

  솔직히 지속 평생 모자가 바람에 날아간 적이 없긴 했다. 항상 꼭을 넘어서 꽉 맞았는데 원래 모두가 손오공의 긴고아처럼 머리를 쪼이듯 모자를 쓰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모자에 달린 끈을 그저 데코로만 생각했다. 머리와 얼굴이 작은 춘화를 만나고서야 지속은 자신의 머리가 작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순심이 언니는 지속에게 빌런은 아니었다. 막말을 해서 그렇지 나쁜이는 절대 아니었다. 요가학원에 부침개를 부쳐와 나눠주고 김밥을 싸와 나눠먹고 정이 많은 언니였다. 한 번씩 다른 회원 언니에게 피부가 썩었네라고 하거나 원장님에게 자꾸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한날은 수업 중에 누가 방귀를 뀌었는데 지속은 그 사람이 무안할까 봐 못 들은 척했고 원장님과 다른 회원들 모두가 침묵했는데 순심이 언니만 풉하고 뿜더니 똥을 싸라며 깔깔거렸다. 젊은 아가씨였는데 얼굴이 붉어지더니 다음날부터 요가학원에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초창기 멤버들과 즐겨 시간을 보내던 원장이 포트가 고장 났다는 핑계를 대며 더는 차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수업 후 바로 집으로 갔다. 지속은 담소 시간이 즐거웠는데 좀 아쉬웠다.

  차를 시작으로 학원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원장이 교육을 간다며 일주일씩 수업이 없기도 했고 별안간 휴강되기도 했다.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던 지속은 근본 없는 스케줄이 실망스러웠다. 원장은 서울로 열심히 교육을 다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요가학원 간판을 내리고 나이스볼(정식명칭은 따로 있음)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그러더니 일주일에 5회, 한 달에 12만 원이었던 요가 수업이 일주일에 2회, 3개월에 78만 원인 나이스 볼로 바뀌었다. 지속은 엄청난 변화에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그동안에 정이 깊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원장님을 응원하고자 등록해 다니려고 했다.

  삼 년 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원장님과의 인연을 쉽사리 끊고 싶지 않았다. 한데 한 회원 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과도기 기간 동안 예전 수강료를 내고 원장이 다니란 소릴했다는게 아닌가. 지속이 원장에게 물을 땐 그런 말이 없었다. 바로 78만 원을 내라고 했다. 보니 순심이 언니에게도 바로 78만 원을 내라고 했다고. 지속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다. 푼수 때기 순심이 언니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어리둥절했다. 지속은 그 언니처럼 막말을 한적도 없는데, 다녀도 그만 안 다녀도 그만인 취급에 원장에 대한 섭섭함이 밀려왔다. 스승의 날에 구찌 립스틱까지 조공을 받친 지속에게 어쩜 그럴까. 지속은 원장들은 다 똑같다고 좋아한 자신이 바보였다고 미련 없이 요가학원을 관뒀다.

  원장은 원이의 돌 때 귀여운 원피스를 선물해주고 우연히 지속 혼자만 수업을 들은 날엔 정성껏 마사지도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건만. 지속은 원장에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멋대로 해석해버렸다. 그리곤 보란 듯이 요가학원 근처의 필라테스를 등록해버렸다. 돈이 없거나 비싸서 관둔 게 아니라는 걸 어필이라도 하듯이.

  지속은 지금은 나이스 볼이 된 요가 학원 근처를 지날 때마다 창문에 불이 켜졌나 원장님 차가 있나 자기도 모르게 미련을 뚝뚝 흘리며 쳐다보곤 했다. 다시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요가학원을 다니던 때가 좋고 그리워 한 번씩 눈길이 갔을 뿐.

순심이 언니는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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