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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l 19. 2022

내 혈육의 모든 것

원수에서 빽으로 편

  지속은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었다. 종부는 어린 시절엔 지속을 언니라 부르며 졸졸 귀찮게 따라다니다 맘에 안 들면 앙칼지게 지속의 팔뚝이나 등살을 물어뜯었다. 지속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온몸에 동생의 이빨 자국을 달고 살았다. 한 번은 심하게 물려 피멍이 든 지속의 팔을 보곤 화가 난 아빠가 상처에 된장을 발라 버린다며 그러면 종부 이빨이 몽땅 빠진다고 씩씩대며 된장을 퍼왔는데 어린 지속이 놀라 아빠를 말린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다. 물려서 아파도 종부의 이가 몽땅 빠진다니 그건 안될 일이었다. 지금에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며 들은 체도 안 했겠지만 열두 살의 지속은 아니었다. 아빠와 누나가 실랑이하는 모습에 식겁한 종부는 그 후 더 이상 지속을 물지 않았다.

  십 대가 된 종부는 컴퓨터 게임에 매진했다. 그랬다. 게임중독자, 게임폐인이었다. 공부도 안 하고 입을 벌린 채 욕설을 내뱉거나 낄낄 거리며 게임에 집중한 모습은 몹시  한심했다. 한 번은 지속이 수행평가로 컴퓨터를 쓰는데 주소 내역에 음란사이트를 방문한 기록이 있어 놀랐다. 종부 나이 열다섯이었는데 지속 눈에 다섯 살 같은 종부가 그런 음탕한 것을 봤을 리 없다고 생각해 지속은 아빠가 봤다고 확신했다. 우리 아빠 아직 젊네? 이러다 막둥이 탄생?

지속은 퇴근한 아빠에게 대놓고 물었다. 왜 그런 걸 봤냐고. 그러자 아빠가 길길이 날 뛰며 내가 미쳤냐고 그런 걸 왜 보냐고 종부지 왜 나를 의심하냐고 억울하다 말했고 아빠는 같은 남자로 종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가 왔다며 학원에서 집으로 막 들어선 종부를 불러 무릎을 꿇렸다.

"여자 몸이 궁금해서 그런 걸 보았니? 아들아"

아빠는 부드럽게 물었다. 종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가요? 되물었다. 아빠는 괜찮다며 사춘기니 볼 수도 있다고 거짓말만 하지 말라고 좋게 타일렀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 종부는 도깨비가 보고 갔나? 헛소리를 하다 쪼갰고 그 모습에 조용히 있던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며 차라리 내  보라며 웃통을 다. 지속은 놀라 엄마를 필사적으로 말렸고 아빠도 당황해 소리를 질렀으며 종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다신 음란물을 안 보겠다고 진지하게 빌었다. 지속은 무슨 집구석이 이래? 원래 이렇게 가정교육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의아하다 못해 으악했다. 어쨌든 지속이 알기로 적어도 집에선 종부가 더 이상 음란물을 보지 않았으니 나름 효과가 있었다.

  수시로 대학에 붙어 수능을 보지도 않고 대학생이 된 종부는 다한증으로 군대도 안 가고 산업체로 대체 복무를 했다. 종부는 뭔가 남들이 큰 산처럼 여기는 고비를 넘지 않고 곤돌라를 타고 쉽게 올라갔다. 산업체 요원으로 복무할 적에 같은 방을 쓰는 형이 종부에게 혹시 누나가 있냐 물었는데 종부는 웃으며,

"있는데 제 얼굴에 머리만 깁니다"

라고 말하자 그 형은 더는 종부와 말을 섞지 않고 부쩍 짜증을 부렸다고.(미안하다 종부야)

  지속은 시집가기 전까지 종부와 치고박고 싸웠는데 정말 화가 난 종부가 누나를 차마 때리진 못하고 마시던 포도주스를 지속의 머리에 부었다. 지속은 태어나 처음으로 끈적한 주스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분해서 악을 썼다. 거실은 쏟아진 주스로 아수라장이 됐고 뒤늦게 그 장면을 본 엄마는 지속과 종부의 등짝에 스매시를 날리며 남매의 포도주스 전쟁은 막을 내렸다. 솔직히 지속은 왜 주스를 뒤집어썼나 싸움의 시작은 기억나지 않았다. 남매의 싸움은 늘 그렇듯 소소하고 깨알 같은 일로 시작됐다. 지속은 종부와의 삼십 년 전쟁에 아빠 엄마를 원망했다. 왜 저런 똥을 싸질러 스트레스를 주는지 지속은 종부가 지긋지긋했다.

  그랬던 혈육이 좋은 순간이 왔으니 지속이 결혼으로 출가를 한 서른둘부터 남매 사이에 훈훈한 온풍이 불어왔다. 자주 안 보니 다툴 일이 없었고 서로 바쁘니 싸울 시간이 없었다. 원이가 6개월 무렵, 아빠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두 달 동안 생사를 오고 갈 때 아기 때문에 꼼짝 못 하던 지속은 종부에게 처음으로 의지를 했다. 종부는 어른스럽게 교통사고 처리를 나서서 했고 아빠를 간병했으며 엄마와 지속을 위로했다. 온 가족이 처음 겪는 큰 불행에 지속의 가족은 똘똘 뭉쳐 위기를 잘 헤쳐 나갔다. 그때까지 장롱면허였던 종부는 급하게 운전을 배우기까지 했다. 지속은 종부가 고맙고 미안했으며 든든했다.

  결혼 후 병히와 싸우고 집을 나와 울다가 종부에게 전화를 걸면 시간이 밤 열두 시든 새벽 한 시든 누나를 데리러 세 시간 거리를 운전하고 오겠다는 종부였다. 다음날 종부의 출근에 지장이 갈까 봐 오지 말라 말리고 방을 잡아서 혼자 밤새 울지언정 지속은 불행하지 않았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병히와 화해하고 웃으며 종부에게 전화를 걸면 종부는 앞으로 또 그러면 그땐 말려도 데리러 가겠다고 말해줬다. 종부는 지속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든든한 백이었다.

  어느 날 병히가 지속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 종부 믿고 깝친적 많지?"

지속은 웃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러니 조심해 쨔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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