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밤하늘 보기를 좋아했다. 인공적인 불빛 한점 없는 새카만 밤이 되면 나 여기 있었지롱 하고 작고 미미한 빛을 내뿜는 별을 보면 현실을 벗어나 맨몸으로 우주로 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친구 인하와 집으로 걸어오는 그 짧은 길에 보는 별빛은 내가 그리는 반짝이는 미래이기도, 고된 공부로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현재이기도 했다. 그러다 특별한 경험과 마주했는데 그날도 인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번씩 밤하늘의 별들과도 시선을 맞추며 집에 오는 길이었다. 좁다란 오솔길을 인하와 한 줄로 걷는데 밤하늘에 낯선 것이 눈에 띄었다. 별도 아닌 것이 자유자재로 요란하게 움직여 새인가 했는데 동그란 옥색의 빛을 내뿜는 세 개의 물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상하 좌우 지그재그로 움직이는데 놀라서 뒤따라오던 인하에게 소리쳤다.
"UFO다! 야 저기 하늘 좀 봐봐!"
맹꽁이 안경을 썼던 인하는 어디 어디? 묻더니 자신은 마이너스 시력이라 밤하늘에서 달 밖에 못 본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엄청난 일의 목격자가 나 혼자란 사실이 아쉬웠다. 인하도 봤더라면 자신만만하게 교실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썰을 풀었을 텐데.
그날 밤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비행기도 새도 풍선도 아니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에 온 정신을 사로잡혔다. 외계인이 있을 리가.. 그럼 내가 본건 뭘까? 미래에서 온 나 자신?! 공상에 빠진 나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쉬는 시간, 친구들 앞에서 별 것도 아닌 일을 근사하게 꾸며 재밌게 말하던 재주가 있던 난, 어제의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늘 조용하지만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던 짝꿍의 귓가에 속삭였다.
"혹시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짝꿍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어제 목격한 비행 물체에 대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최대한 있어 보이게 그리고 그녀가 내 말을 믿도록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놀란 표정의 짝꿍을 보며 왠지 모르게 으쓱했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또라이가 됐다. 4차원 소리를 듣긴 했지만 또라이라니..그건 싫었다.
그런데 얼마 뒤 옆반 진짜 또라이 지혜가 우리 반에 오더니 날 찾았다. 평소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늘 책상 위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철퍼덕 누워있던 그녀와 친분이 전혀 없었는데 날 왜 찾는지 궁금해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함께 화장실로 갔다. 주변에 아이들이 없는 걸 확인하자 지혜는 내게 속삭였다.
"너 진짜야?"
내가 뭐가 진짜냐고 되묻자,
"UFO를 봤다며. 어디서 봤어? 얼마나 목격한 거야? 3초 안에 사라졌지? 그렇지?"
평소에 보지 못한 생기가 넘치다 못해 똘끼를 마구 내뿜는 지혜에게 얼마 전 목격한 이야기를 상세히 해줬다. 그러자 눈을 반짝이며 이건 태어나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데 너는 믿어줄 거 같아 말한다며 다시 목소리를 줄였다.
"있지. 나도 UFO를 봤어. 학교 운동장에서.."
지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풉하고 웃으며 나도 모르게,
"똥파리였겠지. 무슨 운동장에서 UFO를 보냐?"
그 순간 차갑게 표정이 굳던 지혜는 말을 맺지도 않고 쌩하니 뒤돌아서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난 얼음처럼 굳어서 그 자리에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서있었다. 나도 분명 UFO를 봤는데 왜 지혜의 말을 믿을 수 없었을까. 나야말로 밤하늘을 노닐던 불나방 세 마리를 본 게 아닐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게 지혜와 나눈 유일한 대화였다.
성인이 된 후 그 누구에게도 그때의 UFO 목격담을 말한 적 없었다. 또라이로 보이는 게 싫었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UFO까지 봤다고 하면 빼박 이 구역 또라이 당첨이었다. 한 번씩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신나게 UFO 목격담을 이야기하던 그때의 순수함이 그리웠다.
지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줬다면 지금 그녀와 종종 만나 커피 한 잔 하는 사이가 됐을까. 이제는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데 지혜의 다 듣지 못한, 그래서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은 UFO 목격담이 엄청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