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낯선 사람과 첫 말문을 여는 것이 힘들었다. 학창 시절에는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5월까지는 담임선생님의 성격을 파악하고 학급 친구들의 성향과 특징을 얼추 알아야만 힘겹게 말문이 열렸다. 그래서 3,4월은 유령처럼 지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짓궂은 친구들은 말을 못 하냐 묻기도 했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주변 탐색이 끝나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없고 늘 의기소침했기에 입을 뻥끗하여 나의 생각과 의사를 말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겨웠다.
학기 초, 복도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이 주전자를 주며 선생님들 마실 물을 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켜 갖다 드리니 넌 몇 반이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차마 저 쌤반 인데요. 말도 못 하고 7반이라 거짓말을 하고 나왔는데 새삼 나의 무존재감이 속상하고 서글펐다.
그러다 탐색을 마친 5월이 되면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친구들 앞에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 대사를 똑같이 따라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읽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새로 만난 친구들은 얌전하던 내가 돌변한 것이 놀라웠는지 혹시 빙의된 게 아닌가 묻기도 했다. 알던 친구들은 저게 지랄병이 다시 도졌구나 하며 그러려니 했다.
성인이 된 후론 3,4월의 긴 탐색의 시간을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학창 시절 진짜 내가 되었던 5월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다소곳한 조심스러운 그리고 눈치를 살피는 학기초의 모습으로만 사회생활을 했다. 특히 대학교에서의 5월은 좀 애매했는데 같은 과라고 매일 보는 것도 아니고 교양 수업은 전 학번을 아우르니 3,4월이 의미가 없었다. 또랑에서 놀던 피라미가 바다로 나가니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의 대외적인 성격은 내향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생이 되니 모르는 사람들과 한조가 되어 과제를 하거나 길거리를 걷다 말을 거는 낯선 이들도 많았다. 정말 싫었다. 특히 도를 아세요를 한 번 만났는데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하고 어버버 하니 만만하게 봤는지 끝까지 붙잡고 보내주지 않았다. 조상님이 보인다. 영은 맑은데 표정이 어둡다. 어떻다. 진땀을 빼며 겨우 떼어내곤 그들을 만났던 대학가를 걷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언제 어디서 도를 아세요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거리를 걸을 때면 시선은 정면이 아닌 바닥에 두었다. 바닥에 떨어진 돈이라도 줍고 다녔음 덜 억울했을 텐데 동전 크기의 가래침만 보았다. 주눅 들어 어깨가 굽은 데다 고개까지 숙이니 한 마리의 거북이 따로 없었다. 현재 날 지독히 괴롭히는 고질병 거북목은 그때부터 조짐을 보였다.
바닥만 보고 걸어도 도를 아세요는 말을 걸었다. 도 따위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또 붙들려 거리에서 실랑이를 했다. 이 정도면 난 그들에게 포교 타깃이라고. 눈을 부라리며 쌍욕을 할까 했지만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스무 살의 여리디 여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몇 번 겪었다고 적응이 되어 고심 끝에 미친 척 그들을 이렇게 퇴치했다.
"저기.. 할머니가 등 뒤에 보이는데..."
"네? 전 할머니가 살아 계세요."
"증조할머니시네요. 바로 님 뒤에 계세요."
"증조할머니도 살아 계세요. 대대로 장수 집안이거든요. 올해 백오십 살 정도 되셨으려나."
예전에 돌아가신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아신다면 정말 무덤을 뚫고 나오실 일이었다. 나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도를 아세요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말을 돌리더니 영이 맑으신데 얼굴에 수심이 졌다며 같이 카페로 가 공부를 하자고 했다. 난 공부요? 돌머리라 한글도 모르는데 기역니은부터 알려주면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한숨을 푹 쉬더니 그냥 가던 길 가라며 놓아줬다. 나름 선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십 분이나 대화를 하며 상대했기에 통쾌하지 않았다. 그 후 다시 만났을 땐 고개를 쳐들고 안 들리는 척 개무시를 하고 성큼성큼 앞서 지나갔다. 그랬더니 빠른 포기를 하곤 달라붙지 않았다.
내게 학교에서의 적응기간 3,4월이 사회에서도 간절했다. 만약 그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적응을 완료한 5월의 도른 자가 되어 노처녀의 학원에서도 사이비 언론사에서도 참 재미지고 멋진 선택을 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 텐데. 도른 세상을 이기는 건 역시 도른 자뿐인 건가?
애석하게도 남편 병히는 5월의 나와 산다. 똘끼가 충만한 마누라도 좋지만 가끔은 정상적인 부부 사이의 대화를 하고 싶다는데 드립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걸 어쩌라고... 그럼에도 지금껏 날 감당하고 사는 병히에게 심심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본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