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여쁘고 참한 아가씨들이 많은 것 같은데 종부의 짝은 어디에 있는 걸까? 36살 모태솔로 남자, 내 동생 종부가 짝을 찾는 여정을 웃음기 빼고 담백하게 써보려 한다.
종부는 시커먼 남자들만 득실득실한 건축학과를 다니며 대학시절 C.C는 꿈도 꾸지 못했다. 본인도 여자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컴퓨터 게임을 더 좋아했기에 그나마 와꾸?!가 봐줄 만하던 20대의 연애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건축기사 자격증 하나 덜렁 딴 종부는 아빠의 설비회사에 취직한다. 말이 취직이지 백수나 다름없었다. 실컷 자고 11시쯤 일어나 아점을 먹고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다 아빠가 사무실에 나오라고 연락을 하면 슬리퍼를 신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사무실로 나갔다. 현장일이 있을 땐 꼭두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왔지만 한 달에 보름은 백수 모드였다. 그래도 아빠가 느지막이 사업을 자리 잡으며 아들의 미래는 책임질 수 있어 종부도 좋은 세월을 영전 노예(아빠의 고향 지명)로 허비했다.
그러니 소개팅이나 맞선이 들어올 리가 있나. 20대의 자만추의 기회를 잃은 종부에게 외간 여자는 꿈결 속에서나 구경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관련 자격증을 5개나 취득하고 우연히 지방직 경력경쟁채용의 기회를 잡아 공무원이 된 것이다. 그러자 줄줄이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종부는 그동안 여자 구경을 못했던 터라 주말이면 신나게 오전 오후 소개팅 두 탕을 뛰며 여자들을 만났다.
크, 여기까지였으면 내가 종부를 소재로 글을 안 썼지. 진짜 난관은 소개팅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골의 특성상 대기업을 다니거나 공무원이면 어른들에게 1등 사위 감였는데 중요한 건 그 어른들의 자녀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 바로 소개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도 성격도 집도 차도 아닌 바로 얼굴이었다. 누가 봐도 못생긴 종부는(미안하다 혈육이여) 여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매번 까였다. 나는 평소 내성적인 종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나와 한때 노처녀 학원에게 강사를 했던 클라라쌤에게 미친 척 연락을 해 종부와의 소개팅을 주선했다. 클라라는 나와 동갑이라 종부보다 연상이었기에 너른 누나의 마음으로 종부를 대해주리란 희망이 있었고 무엇보다 강사 시절 그녀와 2:2 미팅을 했었는데 그때 그녀의 매너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무표정으로 웃지도 않고 상대 남자가 말을 걸어도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반면 클라라는 활짝 웃으며 처음 본 남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축구교실을 하던 남자들이라 키도 크고 외모도 괜찮았지만 뭐랄까. 날티가 났달까? 나이트 죽돌이 느낌? 암튼 그런 쎄한 기운이 느껴져서 별로였는데 그런 날탱이들을 유연하게 상대하는 클라라를 보며 나와는 달리 예의가 바르다고 느꼈기에 종부를 떠올린 것이었다.
종부도 연상의 여인과의 만남을 오케이 했고 그렇게 십 년을 넘게 나와 알고 지낸 클라라는 종부와 소개팅을 했다. 그 결과는? 궁금하시죠? 엄청 궁금했지만 청춘남녀에게 부담이 될까 연락도 못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 종부였다.
"잘 안됐어. 다음에 만나서 파스타 먹자니까 느끼해서 싫다고 하고 고기 먹자니까 고기는 아니죠. 정색하고 오늘 초밥도 다 남기더라고."
클라라는 파스타를 엄청 좋아해 만날 때마다 나랑 파스타만 먹었는데 내가 아는 애가 맞나 싶었다. 취향이란 게 있으니 종부가 맘에 안 들었구나 생각하며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따로 클라라와 연락도 안 한 채 별생각 없었는데 종부가 클라라에게 잘 들어가셨냐는 톡을 보냈는데 1이 안 사라진다고 차단을 당했나 프로필도 안 보인다고 하는데 거기서 내 꼭지가 돌았다.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별로면 좋은 인연 만나라 하면 될걸. 나랑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니고 이건 나를 무시한 거라고. 그래서 나도 클라라를 차단했다. 자초지종을 따져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종부에게 미안했다. 그 날탱이들한테는 세상 사람 좋게 대하더니.
아차차, 그 남자들은 피지컬이 훌륭하고 잘생겼었지. 2:2 미팅 후 클라라가 그동안 소개팅한 남자들 중 외모가 원탑이라고 침을 튀기며 말했었는데 그 잘생긴 남자들에겐 애프터 신청이 없었다.
나는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내가 엄청난 실수를 종부와 클라라에게 했다. 얼빠에게 얼굴 못생긴 종부를 소개해주다니! 여전히 그녀를 차단하고 있지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인사를 전해 본다. 그리고 얼굴 빼곤 참 괜찮은 내 동생 종부에게도 좋은 짝이 나타나기를.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면 종부가 소개팅녀에게 까이고 집에 들어오면 마치 온 가족이 상대 여자에게 차인 듯 초상집 분위기에 빠졌다. 아빠는 줄담배를 태웠고 엄마는 종부를 임신했을 때 상한 고등어조림을 먹어서 종부가 인물이 없다고 자신을 자책했으며 나는 우월한 유전자를 혼자만 몰빵으로 받은걸 안타까워했다. 어차피 결혼 후 애만 키우는데 좀 덜 예뻐도 됐구만.....
오늘도 누나는 하나뿐인 혈육을 위해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 알라신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종부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