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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Aug 23. 2022

질투의 화신

질투받고 싶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질투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인기까지 많으면 그 친구를 마주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짝사랑 남학생이 그 친구에게 러브레터라도 보내면 이 세상을 뜨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게 고교시절 내내 사무치게 질투했던 예지가 대입에 실패하고 나처럼 시골 고향 학원강사로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군가 가슴에 냉수를 들이붓는 기분이었다. 질투가 차게 식어버렸다. 그리곤 다시 불붙지 않았다. 예지는 그렇게 내게 관심 밖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갈망하던 대학원에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실력 좋은 이를 질투하자니 모두가 대상이 되었다. 그중 동기 남자 학우가 한 명 있었는데 여우과였다. 시를 잘 써서 상도 많이 받고 교수님들의 예쁨까지 받더니 세상에 소설도 잘 썼다. 성기 1인칭 소설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가 그런 걸 썼다. 나는 1인칭을 시킬 만큼 존재감 있는 부위를 달고 있지 않았기에 그의 소설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날 후로 날고기는 무수한 이들 중 그 자식을 중점적으로 질투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전문대 문창과를 나온 이로 키도 크고 머리도 컸지만 남자다움으로 포장이 가능한 비주얼로 썩 괜찮았다. 그와 친분이 전혀 수료 때까지 얼굴과 이름만 아는 사이로 지냈다. 그래서 맘껏 질투하기가 가능했다.

  그는 논문도 잘 써서 석사학위도 단박에 땄고 한양대 박사학위까지 따냈다. 유명 문예지에서 평론으로 등단을 하더니 시집을 냈고 북콘서트까지 성황리에 가졌다. 그의 페이스북을 며 속에서 이글거리는 마그마가 차오름을 느꼈다. 네이버 프로필에도 시인으로 검색되고 시집, 산문집, 포토북 등 저자로 출간된 책이 도합 8권이나 다. 저 자식은 뭔데 저렇게 일이 잘 풀리지? 프로필 사진 속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정말 얄미워 휴대폰 액정에 딱밤까지 갈겼다. 실제로 딱 한 대만 때려봤으면 재수 없게 잘 나기만 한 놈.

  불과 몇 년 전까지 한 번씩 그의 SNS를 염탐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2012년에 대학원에 입학한 시작은 똑같았는데 과정과 결과가 딴판이었다. 내가 결혼 후 애 둘을 낳고 기르며 퍼진 아줌마가 될 동안 그는 커리어를 탄탄히 쌓아 올렸다. 월세집을 셀프 리모델링한 MZ세대로 방송에도 나왔는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그를 발견하고 멈춰 끝까지 프로그램을 봤다. 허름한 지하 원룸을 벙커처럼 꾸몄는데 자유가 느껴졌다. 자유가 없던 난 넋을 잃고 부러움에 휩싸여 그의 삶을 엿봤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나고 오래도록 이어진 그를 향한 질투를 그만뒀다.

  앞으로 절대 그의 책은 사지 않겠다고 나의 두 딸에게도 대를 이어 사지 말라고 일러둘 예정이었는데 질투를 걷어내자 그의 시가 그의 책이 궁금했다. 대표시집을 검색하고 주문까지 일사천리로 완료했다. 실은 오래전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의 시가 궁금했다. 합평 때 가슴을 덜컹거리게 하는 그의 시를 읽고 놀란 표정을 감추기 급급했는데 이제는 마음껏 놀라고 감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틀 뒤 도착한 그의 시집을 펼쳤다. 그가 성공하고 인정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팬이 되진 않았다. 그를 응원생각도 없었다. 그저 질투를 관두는 것으로 관심을 접었다.

  얼마 전 병히가 브런치를 하며 혹시 악플이 달리는지 물었다. 난 브런치 작가님들은 지성인이며 고상하고 품격 있어 저급한 악플을 다사람이 없다고 집단 지성이 모여 선플을 주고받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냐 말했다. 병히는 머리를 갸웃하더니

"진짜 유명한 브런치 작가한테는 악플 엄청 달릴걸? 질투 나잖아."

아.... 그러고 보니 내 글에 악플이 달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느 작가님이 구독자를 500명을 앞두고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 브런치를 탈퇴까지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내 글은 사람들이 격려하고 싶은 딱 그 정도의 글이구나. 하기야 싹이 막 돋아나는데 새싹을 밟으면 그건 인간아니라고. 밟을 꺼리가 있어야 밟히지 않을까.

  브런치를 하며 나 역시 선플을 많이 썼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글인데 미비한 관심에 혹시나 작가님이 글 쓰기를 관둘까 봐, 나 나름대로 계속 써라. 포기하지 마라. 내가 당신의 성실한 독자가 되어 읽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졸렬하고 미흡한 글에 달리는 하트와 댓글도 나와 같은 마음을 한 이들의 진심이라고 생각해 고맙고 감사하기만 다.

  언젠가 내 글에 질투의 악플이 달리는 기쁜 날이 오면 그날은 병히와 성대한 치킨 파티나 열어야겠다.

 첫 악플을 기다리며 그대의 눈동자에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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