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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27. 2022

매운 게 좋아

속병은 덤이라네

  난 매운맛 중독자로 그 시초엔 사회생활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어린 시절 김치도 물에 씻어 먹던 맵 찔이가 어른이 되어 매운맛을 찾게 된 데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바로 표출하지 못하고 켜켜이 쌓아둔 분노였다.

  쌓인 분노는 배설되지 못한 채 썩어갔는데 이는 스트레스의 비옥한 양분이 되었고 고질병인 임파선염을 키웠다. 스무 살까지 동네병원도 다닌 기억이 없었는데 돈을 벌며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한날은 피곤한 몸으로 노처녀 원장과 회식에 갔는데 고기를 사준다고 데려간 곳이 돈 스탑이었다. 1인분에 3900 원하는 냉동삼겹살 가게로 고기 맛은 그냥 그랬다. 그래서 바구니에 담긴 고추를 하나 집어 먹었는데 누가 입안에 불을 지른 듯 고통이 밀려오더니 뒷덜미에서 땀이 났다. 그리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속이 아리다 싹 풀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고기를 집어먹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혼자 매운 고추맛에 빠져 고추만 먹으니 그 모습을 보던 한 쌤이 이런 말을 했다.

"지속쌤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가 봐. 매운 고추만 먹고"

그 후 매운 음식은 나의 힐링푸드가 되어 날 위로해줬다.

  엽기떡볶이, 신전떡볶이, 매운 짬뽕은 주기마다 먹었는데 종부는 엽떡을 같이 먹다 너무 맵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맵찔이던 병히는 나와 십 년 세월을 보내며 매운맛 중독자가 되었다. 얼씨구나, 우리는 야식으로 마라샹궈와 마라탕, 매운 커리를 먹고 아침이면 화장실 전쟁을 치렀다.

  임신을 하고 수유를 하며 근 2년을 매운 음식을 참고 참았다. 한 번씩 눈물이 찔끔 나게 맵칼한 맛이 끌렸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소중한 딸내미의 똥꼬가 빨갛게 되는걸. 까짓 거 이거 하나 못 참냐? 주입식 모성애로 본능을 누르는 나날이었다.

  모유수유가 끝나는 날, 병히와 교촌 레드 콤보와 회를 시켜먹었다. 간장보다 와사비를 더 많이 풀어 간장 맛 와사비를 만들어 회를 푹푹 찍어먹었다. 코가 뻥 뚫리는 매운맛에 새벽 수유의 고단함이 날아갔다.

  그 후 육아로 힘든 날이면 매운맛을 찾았다. 좀비처럼 죽지 못해 삐그덕 삐그덕 겨우 몸을 움직이며 엄마의 몫을 주부의 몫을 겨우 하다 매운맛이 들어가면 동공이 커졌다. 온몸에 붉은 고춧가루 피가 돌고 활기를 찾았다. 다음날 비록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릴지언정 매운 걸 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꽉 찬 3년을 보냈더니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명치가 종일 욱신거려 지난밤 진이가  내 가슴팍에 박치기를 해 근육이 놀란 줄 알고 파스까지 붙였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벼르고 벼르다 내과에 가서 위궤양 약을 일주일치 처방받아먹었다. 그랬더니 고통이 잠잠해졌는데 약을 끊고 이틀이 지나자 또다시 명치끝이 욱신거리고 속이 쓰렸다. 의사가 약을 끊고 다시 아프면 위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로 위에 엄청난 고통을 준 어리석은 지난날을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생애 첫 위내시경을 앞두고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퇴근한 병히를 소파에 앉히고 목소리까지 내리 깔며 유언을 남기겠다고 했다. 혹시나 병히가 날 끌어안고 울면 어쩌지? 나도 눈물을 못 참을 거 같은데..... 그리고 언제나 빗나가는 예상, 병히는 콧방귀를 뀌더니 헛소리 말라며 짜증을 부렸다.

  저 정말 무서운데 어쩌죠? 내일 아침 검사받을 예정인데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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