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상가에 정육점이 새로 오픈했다. 육 개월 단위로 간판이 바뀌는 매장이었기에 처음에 든 생각은 걱정이었다. 사장님이 참 용기가 있는 분이네. 동네 주민으로서 힘을 좀 실어볼까? 그렇게 새로 연 정육점에서 둘째 진이의 이유식용 소고기를 사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오십 대 초반으로 서글서글한 인상에 친절하고 수완도 좋았다. 진이의 외모를 극찬하며 원이에겐 달콤한 사탕을 한주먹씩 주기도 했다. 다진 안심 반근을 4만 원 돈을 주며 샀지만 게이치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육점을 찾았다.
기계가 아닌 손수 고기를 정성스럽게 다져주었기에 더 믿음이 갔고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랑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중학생과 초등생 남매를 둔 아저씨는 원이, 진이만 보면 그맘때가 제일 예쁠 때라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아저씨는 내게 단골이라고 곰돌이 장바구니를 선물로 주고 집에서 끓여 먹으라며 돼지등뼈도 한 봉지씩 싸줬다. 이웃의 정으로 참으로 따사로운 한때였다. 그렇게 아저씨에 대한 신뢰가 켜켜이 쌓이자 굳이 소고기를 다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전화로 집을 나서기 전, 안심 반근을 다져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 아저씨와의 사이가 어색해졌는데.... 나의 오해인지 한번 읽어봐 주시길.
전화로 주문을 하고 정육점을 찾았는데 다져진 소고기 옆에 도려낸 비계가 많았다. 안심은 살코기만 있는 부위고 그동안 다지는 걸 직접 봤을 땐 저렇게 도마 위에 비계가 많지 않았는데 다른 부위를 손질하고 둔 거겠지? 아저씨를 믿었다. 고기 빛깔이 좀 탁했지만 군소리 없이 계산을 하고 나왔다. 설마... 사람 좋은 아저씨가 그럴 리가. 의심이 싹트는 걸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사온 고기를 다 먹고 또 전화로 안심 반근을 다져 놔 달라 주문하고 정육점을 찾았다. 아저씨가 바빴는지 나를 보곤 미리 준비 못했다며 급히 고기를 꺼내왔는데 안심 부위가 요상했다. 덩어리가 아닌 은박지에 싸인 난도질된 작은 고기 조각들을 도마 위에 쏟더니 다지는 것이 아닌가?! 뭐지? 싸게 사는 것도 아니고 안심 고기 값은 제대로 내면서 왜 저런 꼬다리 부위를 사야 하는 건지 머리가 어찔했다. 성격 같아선 쏴붙여야 했는데 아이 둘을 낳고 기르며 성격이 유해 지지 않았던가. 역시나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입을 꾹 닫은 채 계산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지 않았다. 두 달 후 병히가 삼겹살을 사러 갔더니 아저씨가 애기 엄마가 요즘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하며 물었다고. 병히는 별일 없다고 소식을 전했다는데 씁쓸했다. 동네라 유모차를 끌고 정육점 앞을 자주 지나쳤는데 의식적으로 그곳을 쳐다보지 않았다. 배신감. 딱 그 감정이었다. 병히는 차라리 말을 하고 확인을 해보지 왜 멋대로 판단하는지 날 이해하지 못했다. 타고난 둔탱이가 뭘 알겠는가.
며칠 뒤 정육점을 지나치며 힐끗 보니 불이 꺼져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은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더니 결국 문을 닫았구나.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고 정육점 유리 앞에 종이가 한 장 붙어있길래 읽어보니, 교통사고로 이주 동안 가게를 닫는다고. 19일에 다시 문을 연다고 쓰여있었다. 가게 문을 여는 날, 난 부러 고기를 사러가 아저씨의 안부를 물을까 말까 고민했다. 마음이 반반이었다. 아저씨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가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결국 가지 않았다. 원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정육점 앞을 지나왔는데 언뜻 본 아저씨는 괜찮아 보였다. 아저씨에게 마음이 쓰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고기를 사러 간 어느 날 아저씨가 버너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이고 있어, 점심 식사를 하려는 것 같아 멈칫하고 가게 앞을 지나쳤다. 고기를 팔면서 정작 라면으로 한 끼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짠한 감정이 들었다.
요즘은 로켓 프레쉬로 정육점 가격의 반값으로 다진 소고기를 사 먹고 있다. 돈도 아끼고 간편하기까지 한데 왜 기분은 유쾌하지 않을까.... 고기 팩을 담을 때 썼던 아저씨가 선물로 준 귀여운 곰돌이 장바구니에 싱싱한 과일과 야채만 담겨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