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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Oct 21. 2022

쫄보의 대반전

목숨을 구한 나의 영웅

  병히에게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 묻자 병히는 지금 영화를 한편 본 것 같다고 얼떨떨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걱정이 되어 교통사고가 났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말끝을 흐리다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요약하면 여자에게 칼부림하는 남자를 잡았다고. 믿기지 않아 진짜냐고 수차례 물었다. 세상 쫄보가 칼을 휘두르는 남자를 잡았다는 게 믿기겠는가. 만우절도 아니고 싱겁게 농담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아무 재미도 득도 없는 거짓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떨리는 병히의 음성을 듣고 있자니 진짜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곤 냅다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칼 들고 있는 남자한테 달려들면 어떡해! 나랑 원이 진이 생각은 안 해? 너 잘못되면 애들이랑 나는 어쩌라고!"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병히는 자기 말을 들어보라고 흥분한 날 달랬다. 병히 차 앞에서 젊은 남자가 여자 머리채를 잡아 눕힌 뒤 식칼로 여자로 마구 찌르길래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창문을 내린 채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내리지도 못하고 악만 쓰는 병히에게 시선을 뺏긴 남자 뒤로  트럭 운전수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성큼성큼 다가가 칼을 뺏고 남자를 붙잡았단다. 그 모습을 보고 병히도 뛰어내려 아저씨를 도와 남자를 제압하고 119에 신고를 한 거라고. 슈퍼맨 아저씨는 경찰이 오기 전에 가버리고 병히랑 다른 아저씨가 경찰을 기다리며 범인을 붙잡고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주는 등 수사에 협조하고 사무실로 가는 길에 내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듣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리곤 여자는 살았냐고 물었는데 구급차에 탈 땐 살아있었는데 칼을 수십 방 맞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관련기사를 온종일 기다렸는데 다음날 기사가 떴다. 동창생 스토킹 살인미수 범죄였다. 다행히 여자는 무사했다. 난 병히에게 빨리 신고해서 여자가 살았다고 네가 사람을 구한 거라고 말하자 병히는 진짜 슈퍼맨은 따로 있다고 공을 돌렸다. 그렇게 추억의 한 페이지로 사건을 기억할 때쯤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병히에게 표창장을 준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여자가 산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표창장까지 준다니 병히는 들떠 보였다. 지난 화요일 병히는 표창장과 신고포상금을 받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들어섰다. 나와 두 딸은 우리 집 가장에게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병히가 자랑스러웠다.

  저녁식사를 하며 병히에게,

"네가 왜 지금 나랑 결혼해서 사는지 알았다. 전생에도 사람을 구한 거지. 이번처럼"

"그 반대 아니고??"

  그런가? 겁쟁이 쫄보 모솔 소심남 병히의 대반전이 놀라웠다. 벌레보곤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으면서 어떻게 그런 미친놈을 잡았을까? 설마 쫄보를 연기했나? 십 년 세월을 함께 했어도 여전히 새롭고 신선한 나의 남편 병히. 오늘은 그의 이마에 칭찬 스티커 백개를 붙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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