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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Nov 09. 2022

화가 많은 엄마를 둔 아이는

화가 많은 사람으로 큽니다

  24살 혼전임신으로 갑작스러운 결혼을 해야 했던 엄마는 모든 게 미숙했다. 사랑스러운 눈빛보단 원망의 눈총을 받고 자란 나는 태생부터 눈치를 살폈다.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러 홀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아기 아빠와 함께 오면 수술을 해주겠다고 했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 당시 심심해서 만났던 남자(지금의 아빠)에게 임신 사실을 밝혔다. 남자는 낙태는 안될 일이라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자고 설득했다. 서른 살의 노총각은 결혼이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어렵사리 삶을 선사받았지만 원치 않은 임신과 결혼은 엄마에게 고통이었다. 능력 없는 가난한 남자와 만든 가정은 안락은커녕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감옥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내게 단 한 번도 예쁘다 사랑한다 넌 내 보물이야 같은 말을 해준 적 없었다. 눈치 없이 생긴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는 원망의 소리만 들었다. 내가 눈치가 없다니. 늘 엄마의 눈치를 보며 살 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는데 부족했나.

  어린 시절, 나는 윽박지르는 엄마에게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밖에서 보기엔 순하고 얌전한 아이였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매질을 하고 악담을 하고 신경질을 부리는 엄마에게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신데렐라 만화를 보다 깨달았다. 우리 엄마는 계모구나. 그래서 날 이렇게 못살게 괴롭히는구나. 엄마가 옆에서 기지개만 도 때리는 줄 알고 가드를 올리던 일곱 살의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나쁜 계모야 죽어라!"

엄마는 괘씸하다며 매질을 했다. 어린아이의 작은 실수조차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혼을 내던 엄마가 참 미웠다.

  내가 성인이 되자 엄마는 태세를 전환하더니 딸밖에 없다며 날 좋아했다. 하기야 살림을 다하니 좋아할 수밖에. 엄마는 웃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스무 살에 딸을 서넛 더 낳는 건데 아쉽다고 했다. 아쉽길 다행이지. 그 서넛의 딸 또한 얼마나 쥐 잡듯 잡으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리 신경질적이고 화가 많던 엄마는 나의 두 딸에겐 천사 할머니로 통한다. 애들이 떼를 부리고 난리를 쳐도 언성 한번 올리지 않고 허허실실 웃기만 하는 엄마를 옆에서 보면 낯설다. 원이 진이가 너무 귀엽고 뭘 해도 사랑스럽다고 뽀뽀를 해대는 모습을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자기 딸한텐 안 그러더니... 어이가 없어서 물어봤다.

"나는 미워했으면서 내 딸은 왜 예뻐해?"

"너 미워한 적 없어.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지. 그래서 그때 너한테 못다 한 사랑을 네 딸들에게 주려고."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이제 와서 내 딸들을 예뻐한들 내 상처가 아물리 없지 않은가.

  꽉 찬 나이에 엄마가 된 나조차 딸에게 소리를 지를 때가 많았다. 몸이 힘들고 육아가 벅차서 벗어나고만 싶었. 특히 원이가 4살 무렵 말썽이 늘어 혼내는 날이 잦았는데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던 어느 날 선생님 앞에서 내게 이런 인사를 했다.

 "새엄마 잘 가용~~~"

아이 말에 민망하여 선생님께 요즘 신데렐라 책에 빠져서 새엄마 소릴 한다며 머쓱하게 웃으며 뒤돌아 나오는데.

아.......!

이대로 잘못하다간 우리 딸이 평생을 미워할 수도 있겠구나 번쩍 정신이 들었다.  24살의 엄마와 34살의 나는 서로 다를 게 없었다. 주눅 든 과거의 내 모습에 원이의 얼굴이 겹치자 끔찍했다.

  여전히 화가 나는 날은 많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두 딸을 안고 볼을 비비며 평생 엄마에게 듣고 싶었지만 여전히 듣지 못한 말을 딸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해본다.

  "내 소중한 보물,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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