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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과 일과

은방울 꽃 새싹이 삐죽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by 류정은

생사가 불분명하지만

집 한쪽에 그냥 두었다.


볕이 길어지면서부터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따금 마시던 물을 부어주었는데

초록싹이, 빼꼼 올라온다.


여자는 그제야

안도한다.

지난 봄에 들인 ‘은방울꽃’을

올 해도 볼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작은 토분 속 은방울꽃은

기품 있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튤립처럼

기다랗고 넓은 잎사귀가 높게 올라오고

그 사이로, 가느다란 줄기가 수줍게 올라오다 구부러진다.

바로 그 줄기에,

작고 흰 꽃이 총총총 매달렸다.


이름에서 상상하듯

방울을 꼭 닮았는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린아이의 원피스 같기도 하다.

새로 산 원피스가 마음에 들어서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뱅그르르 돌 때

봉긋하게 퍼지는 바로 그 모양새다.


생전에 여러 꽃을 가꾸었던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작품 속에는

꽃이 자주 등장하는데,

은방울꽃도 그중 하나이다.


그 아름다운 문체를

이길 표현이 없어 잠시 빌린다.


“박적골의 봄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처음 알았다.

산길을 헤매다가 음습한 골짜기로 들어가게 됐다.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진하면서도 고상한,

환각이 아닌가 싶게 비현실적 향기에 끌려서였다.

그늘진 골짜기에

그림으로만 본 은방을 꽃이

쫙 깔렸다.”


*(잠깐 쉬었다가)


평범한 날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 나서는.. <평소의 행복>

오늘은, <은방울꽃> 이야기 전했습니다.


+

이어지는 곡

10CM의 [사랑이 방울지네]


--


평소의 행복은 2020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늦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첫봄을 맞아, 봄의 기운을 마음껏 적었던 시절이다.

2020년 3월 3일엔 은방울 꽃 싹을 찾아보며 좋아했던 것 같다.

박완서 선생님이 묘사해 둔 문장을 겨우 찾아 옮기고는 흐뭇했다.


오선배님이 붙여주신 노래

10CM의 [사랑이 방울지네]는 또 얼마나

사랑스럽게 어울리던지.


--


평소의 행복을

다시 듣기로 듣다가 원고가 보고 싶었다는 어떤 청취자의 부탁으로

매일 아침, 지난해의 원고를 이곳에 올리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코너를

기억해 주셔서

몹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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