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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Jan 25. 2024

ep7. 시어머니와 첫 통화

누군가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님으로 저장되는 순간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전 짝꿍이 내일은 새 해 첫날이니까 서로의 부모님께 안부인사를 드리면 어떻겠냐 제안했다.

사실 일 년 넘게 결혼준비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도 시부모님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그건 짝꿍도 마찬가지.

상대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건 그간 꽤나 편리한 처사였던 것 같다.

명절이며 상견례, 생신 같은 큰 일부터 시작해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차려주시거나, 반찬을 싸주시거나 하는 작은 일까지 매번 안부인사 혹은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 때마다 연락을 드리고 싶어도 번호를 모른다는 핑계로 적당히 짝꿍에게 떠넘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번호를 가족의 이름으로 저장할 때.

짝꿍의 제의가 아직 '결혼 전'이라는 이유로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질 뻔- (며느리에게 시부모란 늘 어려운 존재다.) 도 하였지만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 오히려 잘됐다 생각하며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나는 어른이고, 적당한 타이밍에 안부인사 정도야 어렵지 않으니까.

뚜루루루, 뚜루루루…

“여보세요?”

“어머님, 저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구 전화드렸어요.”

낯선 번호에 경계심이 묻어나던 어머님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온화함으로 가득 물들었다.

사실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나는 알게 모르게 긴장을 했던 것도 같다.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하나, 이번에 전화드리면 앞으로도 꼬박꼬박 전화드려야 하겠지? 그게 도리인 줄은 알지만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나 잘할 수 있을까...' 등등.

하지만 막상 전화를 걸고 나니, 우려와 다르게 나를 알아보시고는 다정하게 반겨주신 목소리 덕에 긴장이 스르르 놓이면서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다행이랄까 뭐랄까 어머님과 약 1시간이나 통화를 나눴다.

나는 오늘의 대화가 즐거웠다. 언제든 부담 없이 전화드릴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어째서인지 어머님은, 오늘 세 번 정도 울먹이셨다.

첫 만남 때도 그랬다.

어머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에도, 짝꿍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이 엄마 생각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이 해요.'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눈가에 촉촉이 고인 그 눈물에 어찌해야 하나 당황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론 마음 한 구석이 찡했었는데

오늘도, 아들에 대해 말씀하시던 어머님의 목소리엔 어김없이 물기가 묻어났다.

아들이란 존재는 대체 뭘까.

도대체 무엇이길래 어머님은 아들 생각에 늘 울먹이실까.

알 수 없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다.

자식 된 자가 어찌 바다 같은 부모의 마음을 다 이해하랴.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내 남편이 좋은 어머니 밑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사실.

"아들을 너무 훌륭하게 키우셨어요, 어머니."

나이 60이지만 아직도 소녀 같은 어머니는 내 말에 좋아하시면서 그 답으로 우리의 앞날을 무한히 축복해 주셨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통화를 했다는 게 나는 그저 좋았다.

고부사이란 갈등이 생기기 쉬운 위치니, 어쩌면 평생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고부사이가 꼭 그렇지만은 않듯, 진심으로 가족이 되는 걸 기뻐할 수도 있다.

내 딸과 같진 못해도, 우리 엄마와 같진 못해도, 서로가 서로를 고맙고 감사한 존재로 여기면 더 바랄 게 있겠나.

적어도 나는 이 감사한 마음이 진심이다. (금지옥엽 귀한 자식을 낳아 키워 내게 보내주셨으니)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를 만나서 좋아요."

"나도. 앞으로 우리 편하게 지내자."

통화를 마치고 나는 드디어 어머님의 번호를 저장했다.

‘어머님’ 이름 뒤에는 꽃을 세 개나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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