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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Jan 26. 2024

ep8.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환경보호와 인맥자랑 그 사이 어디쯤에서

꽃은 언제나. 늘. 아름답다.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는 명언을 남긴 립스틱처럼 하늘 아래 같은 꽃은 없는 법.

색도, 크기도, 모양도, 질감도, 향기도. 모두가 저마다 다른 고유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니 그 개성을 난 사랑 한다.

하지만 화환은 아니야.


나, #예비신부. #ENFJ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이자, 나 혼자라도 지구를 아끼고 싶은 소심한 #환경보호 활동가.


결혼식에 필수인 꽃.

그 꽃마저도 생화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게 아까워 조화로 장식된 웨딩홀을 고른 사람.

초대에 필수인 청첩장.

그 청첩장 역시 버려질 걸 알기에 콩기름에 재생용지를 사용한 친환경 청첩장을 고른 사람.

그러니 화환을 거절하는 이유야 당연히 환경보호라는 명목이 가장 크지만

굳이 하나를 더 꼽자면 화환이야말로 결혼식 허례허식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화환이 갖는 의미는 매우 형식적이다.

그것은 모두의 축하이자, 누군가의 인간관계이자, 자신의 사회적 위치 혹은 인맥자랑쯤?

즉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회에서 결혼식 화환이란 인생을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지표와 다름없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보여주기식 결혼문화에서 (주로 혼주가 갖고 있는)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일지도.


하객도 알바를 쓰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모자란 하객 수가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과 인간관계 전부를 다 보여주진 못한다.

진짜 인간관계는 넓음이 아니라 깊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처럼.

그러니 당연 화환정도야 없을 수도 있다.

하객과 화환이 많아야만 꼭 성공한 인생은 아니잖나.

그럼에도 초라할까 걱정이 된다면 아예 제거하는 것이 옳겠지. 까짓 거 안 받으면 그만.

썰렁한 결혼식장 로비는 와주신 손님들의 온기로도 충분하다.


'결혼식'은 보여주기 문화일지라도, '결혼'만큼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너와 내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거지.

내 결혼은 그리고 내 결혼식은 그런 의미를 담아 만들어 보겠노라.


양가어른들께도 화환을 받지 않으면 어떻겠냐 의견을 여쭙고 허락을 받은 내용이니만큼 종이 청첩장 그리고 모바일 청첩장 모두 잘 보이는 곳에 떡하니 적어두었다.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

그리고 마음을 전하실 곳은 '신부의 계좌 123 - 4567 - 891011입니다.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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