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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Jan 27. 2024

ep11. 소개팅으로 만났습니다.

첫 만남에 대한 기록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이 질문을 자주 듣게 된다.

"그래서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된 건데?"


아, 저희는 소개팅으로 만났습니다.


-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한다.

안경잡이, 짧은 머리, 옷걸이 어깨, 양팔에 문신 그리고 자꾸 날 보며 웃는 얼굴.

그 웃음 덕에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 나한테 호감 있구나. 크크.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궁금해 죽겠으니 어서 말해보라는 친구들에게 이런 피드백을 남겼다.

"괜찮은 것 같아, 내가 만났던 소개팅남 중에서 제일 괜찮아."


-

너와의 소개팅. 이것은 내게 특별한 인생 첫 경험을 선사했다.


그동안 소개팅 제의가 꾸준히 들어왔지만 한사코 거절하며 살아온 이유가 여럿 있다.

원체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편이기도 하고 (금사빠다.) 또 굳이 소개를 받지 않아도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이전에 나갔던 소개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던 터라 (단순히 마음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라 별로였다. 안 좋은 기억이 쌓인 적이 더러 있었고) 결국 소개팅은 나와 맞지 않는 포맷이라 단정 짓고 살았더랬지.

짧은 몇 번의 만남으로 상대를 파악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고.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소개팅을 거절하지 않고 나왔다는 것.

또한 기대감 하나 없이 나온 소개팅에서 처음으로 꽤 괜찮다고 느낀 남자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그 남자와 세 번째 만남에 연인사이로 발전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겐 인생 첫 경험이었고, 이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사귄 지 4개월 만에 프로포즈를.

그렇게 결혼을.


-

어느 순간의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나온 남자들의 형편(경제력 X)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못났다, 못됐다.라는 말로 압축해 설명이 가능 한.

객관적으로 못난 외모 혹은 키 크고 잘생겼지만 영 못난 마음, 자격지심, 쓸데없는 자존심, 여성편력, 몸만 탐하는 욕정,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까운 못된 심보. 등등등!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최근의 미적지근한 연애에선 내가 사랑한다 말했을 때 그 누구에게서도 나도 사랑해라는 답을 듣지 못했다.

이런 연애가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지속됐으니 뭔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허망한 곳에 마음을 주고 헛헛한 연애를 이어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어쩌면 남자 보는 눈이 형편없기 때문은 아닐까.

모든 과정을 지켜본 친구들은 내게 넌 남자 보는 눈이 없으니 앞으론 본인에게 허락을 받고 만나라 했다.

쓰레기 콜렉터가 있다더니 그게 난가? 더 이상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바로 잡아야지.

사랑하는 내가 더 이상 불행한 연애에 노출되지 않도록.


그래서 소개팅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 3자의 눈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딱 1개월 뒤였다.

이별의 아픔은 내게 비연애라는 매력적인 선택지를 주었고, 난 이번에도 아니면 평생 연애하지 않고 살겠다 선언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기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 사람과 내가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부담 없이 밥이나 한 끼 먹으려는 생각으로 자리에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 같이 밥 먹을 사람을 만나게 됐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혼 안 한다던 사람은 그 말을 내뱉은 것이 무색하도록 누구보다 먼저 결혼하게 된다.


-

짝꿍을 만나는 동안 그의 무한한 매력에 푹- 빠진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감사하다. 소개받지 않았더라면 난 이런 사람 평생 못 만났겠지.

고맙다. 주선자 있는 쪽으로 오늘 밤 절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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