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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Jan 27. 2024

ep12. 프로필 사진을 내리면 일어나는 일

아니 글쎄 파혼 아니라니까.

만난 지 4개월 만에 프로포즈를 했다.

친구들을 만나 나 결혼하려구... 말하자 돌아오는 반응은 "너 임신했어?"가 대부분이었다.

임신은 하지 않았다. 난 피임을 잘하니까.

그러나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다 보니, 대부분 걱정 아닌 걱정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사계절은 겪어보아야 한다느니... 어쩌구 저쩌구.


한국인의 빨리빨리, 그 속도로 막힘없이 결혼을 준비했더니 SNS에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았던 커플사진이 웨딩사진으로 바뀌는 데 까지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결혼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고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했다.

혹자는 내게 대놓고 이런 말을 하기도.

‘갑자기 결혼한다고? 어디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진짜' 결혼을 하게 된 게 신기하단다.


이러한 배경 위에 파혼 오해의 소지는 두 달 전쯤 생겼다.

오랫동안 걸어두었던 웨딩 사진을 내린 것이다.

헤어져서는 아니다. 싸워서도 아니다. (신기하게도 우린 아직까지 싸워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고, 회사 단톡방에 들어가게 됐고, 아직 예비신부로써 그곳에 내 결혼 일정을 굳이 드러내어 피차 경조에 부담이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하시죠?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둔 '멀티프로필'이라는 좋은 기능이 있으나 내 그것을 여태 이용해 본 적이 없어, 이것이 당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그냥 사진을 내리게 됐다.


그랬더니 연락이 들이닥치더라.


때 아닌 때에 전화가 와서는 잘 지내냐며 (시동 드릉드릉, 설마 파혼했어?)

응, 나 잘 지내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파혼이 아니면 싸운 거야?)

아니, 나 아무 일 없어. (응. 아니야)

아 그래?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어쩌구 저쩌구...


말은 걱정이라 하지만, 아무 일 없다니까 김샌 듯 왠지 아쉬워하는 느낌은 기분 탓일까?

이런 연락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여느 누가 그러하듯 새로운 연애의 시작 혹은 그 사랑이 끝나버렸구나 하는 것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직감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굳이, 굳-이 연락을 취해 아는 체를 하진 않았다.

내 위로가 어쩌면 상대에겐 불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때로는 알아도 모른 척해 줬으면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원치 않는 슬픔을 애써 남이 들춰낼 필요까지야 있을까.

조용히 그저 잠자코 기다리면 어련히 알게 될 것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의 진심 어린 걱정을 내가 오지랖이란 단어로 치부해 버린 걸 지도.

나에게 주는 관심이 단순한 가십인지 깊은 애정인지 분간이 어려운 모호한 사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하지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아무도 내게 왜 사진을 내렸냐고 물어보지 않았는걸.


네, 뭐. 다들 궁금하셨겠지만(?)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예정대로 결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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