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린 Jan 28. 2024

ep13. 여성 사회자

다름 아닌 당신이라 하는 부탁

신랑의 친구가 사회를 보는 게 관례 같은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흔히 그러하다.

때로는 인생 단 한 번뿐인 소중한 결혼식이니 완벽의 완벽을 기하고 싶어 전문 사회자를 쓰기도 하나

보통 고민의 영역은 지인이냐 전문 사회자냐의 기로에서 시작되지,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확장되는경우는 드물다.


신랑의 친구가 반드시 남자라는 보장은 없지만 대개 남자이듯 지인을 시회자로 모실 땐 주로 남성이 단상에 선다.

깔끔한 정장에 타이, 그리고 낮고 굵은 목소리.

이것은 결혼식 사회자를 상상하면 바로 떠오르는 아주 전형적인 이미지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남자가 사회를 보는 게 마땅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그게 어쩐지 나는 조금 의아했다.

왜? 여자는 사회를 보는 게 생소할까?


그럼 내가 해보지 뭐.

풍성한 꽃장식으로 꾸며진 결혼식장의 사회는 그 로맨틱한 무드와 잘 어울리는 여성사회자가 좋을 것 같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곡선미가 흐르는 의상, 단정한 구두, 우아한 헤어세팅과 그 아래 찰랑이는 귀걸이까지.

그녀가 내 결혼식의 사회를 봐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리라!

아직 그녀가 누구인지는 결정하지 않은 상태지만, 반드시 여성으로 하겠다는 것만은 결정했다.

그리고 그제야 남들처럼 지인이냐 전문사회자냐를 고민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고, 고민 끝에 아주 적합한 인재(?)를 찾아냈다.


나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으면 하는 그녀는 바로 우리 옆 집에 살고 있는 주디. (영화 '주토피아'에 나오는 주디와 닮았다.)

주디는 짝꿍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집에 사는 부부로, 가끔 저녁을 먹으러 집을 넘나들기도 하고, 종종 여행을 같이 가기도 하는 매우 가까운 사이다.

사회자가 예식에 앞서 본인 소개를 할 때, 예를 들어

"저는 신랑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 이 자리에 서게 된 누구입니다."와 같은 멘트를 칠 때.

그 누구보다도 멋지고 뜻깊은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저녁을 먹다가 그녀에게 운을 띄워봤다.

“혹시 결혼식 사회 봐줄래? 물론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돼.”

그러자 주디는 ‘나를? 내가?’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재밌을 것 같았는지 끄덕끄덕 수락해 주었다.

오예!


이렇게 결혼식 사회자가 정해졌다.

보편적으로는 신랑의 친구가 사회를 보고, 신부의 친구가 부케를 받는다.

음, 그렇지만 내 결혼식은 그 '친구'라는 고정관념을 지키되 신랑의 '여성' 친구가 사회를 보고, 신부의 '남성' 친구가 부케를 받는 쪽으로 성별을 달리한다.

왜 굳이 그런식으로 정해서 하객들 사이에 말 나올 법한 일을 만드느냐고 하면,

여기서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고,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누군가가 그 일을 해 준다는 게 포인트라 말하고 싶다.

성별은 거들 뿐, 남녀를 막론하고 지인들의 힘을 모아 만드는 결혼식만큼 의미 있는 건 없으니까?


주디는 최근 사회를 보기 위해 펜을 입에 악물고 발음 연습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싶으면서도 그녀의 수고스러운 노력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결혼식을 빛내줘. 너무 고마워, 주디야 ^0^

작가의 이전글 ep12. 프로필 사진을 내리면 일어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