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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Feb 01. 2024

ep18. 똑같은 결혼기념일

21 Apr 2024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재밌는 거지만)

지인들의 결혼, 그리고 임신소식을 들을 때마다 특히 더 느끼곤 한다.


주변을 보면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결혼날짜를 잡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예비부부이면서 동시에 예비부모의 역할까지 짊어지는 경우였다.

얼마 전까지 외롭다던 사람이 어느새 연애를 하고, 순식간에 부모가 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인생 알 수 없구나 곱절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가는데도 순서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어찌 됐든 축하할 일이다. 결혼도 그리고 임신도. (몇몇은 빼고. 임신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들은 본인이 불러온 재앙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 기어코 불행을 영위하고야 만다.)

그리고 얼마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아주 놀랍게도 새생명이 생겨 나와 결혼기념일이 똑같아진 지인이 있다.


그는 20대 후반의 남성, 나와는 3년 전 다녔던 직장에서 만난 동료(이자 친구) 사이다.

현재는 해외에 거주 중이며, 작년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만나 푹- 빠지게 된 여성과 만난지 1주년이 되는 날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덜컥 아기가 먼저 생겨버렸고 그로 인해 결혼식 날짜를 좀 더 앞당기게 되었는데 그 날짜가 바로 4월 21일.

나의 결혼식 날이다.


어쩜 이럴까, 우연찮게 우리는 같은 날 결혼을 한다.


날짜가 같다니… 처음엔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 덕에 어쩔 수 없이 하객도 나뉘어 한쪽으로 밖에 가지 못할 상황이다.

두 식장간의 거리는 꽤 먼데 비해, 예식 시간은 가깝기 때문에. 그와 나 사이 겹치는 하객들은 아무래도 좀 곤란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똑같은 결혼기념일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그리 못마땅하게 여길 일도 아니긴 하다.

어쨌거나 그들도 1주년에 결혼하는 로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쉬울 터.

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또한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므로.

그래서 축하하는 마음을 담은 메세지를 보냈고 그와 오랜만에 통화도 나눴다.


너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그리고 아빠가 되는 것도 말이야.


아 참, 그러고 보니 나와 결혼기념일이 같은 또 한 명의 사람이 더 있다.

바로 우리 아빠. (그리고 엄마.)

지금은 비록 이혼하셨지만 그들도 30여 년 전의 4월 21일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내가 태어났지.

결혼날짜를 알려드리자 어떻게 똑같은 날 결혼을 하냐며 아빠가 신기해했는데,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헤어지셔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몰랐다. 만약 이혼하시지 않았더라면 매 해 같은 날을 기념했겠지?)

아쉽게도 같은 날 결혼한 나의 부모는 평생 함께 하겠노라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그러므로 나는 더욱더 잘 살아야겠지- 다짐도 해 본다.

헤어짐은 없다. 우리에겐 오직 사별뿐!


다가오는 4월 21일, 두 부부가 똑같은 맹세를 하며 평생을 기념할 결혼식을 치른다.

두 개의 결혼식이라 하객분들의 몸은 어느 한 곳에만 머물러야겠지만 마음만큼은 두 배로 두 부부를 축복하는 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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