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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Feb 02. 2024

ep19. 내 부케를 받아줘

행복을 던져드립니다.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은방울꽃 부케의 꽃말이다.

이 꽃말에 반해 이 부케를 들기로 결정했다.

딱히 은방울 꽃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 부케를 들어 던져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주원오빠가 내 부케를 받아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때부터 나는 항상 뭐든지 의미부여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를 테면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세세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냥 그 날따라 학교에서의 일진이 좋았고,

그 덕분에 기분이 너무나 좋고 즐거웠던 나는 오늘을 특별히 기념하여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날로 명명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4살 처음 은행에 가 통장을 만들 때 비밀번호 네자리를 눌러달라는 은행원의 말에 고민없이 그 날짜를 꾹꾹 눌렀다.

내 행복의 파편을 오랫도록 잊지않고 추억하고 싶어서.


또 이를 테면 내 핸드폰 번호 뒷자리는 3002인데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25살의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전화번호를 바꾸기 위해 뭘로 바꾸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특별한 날'도 좋지만 그보다 '인생의 목표'를 담은 숫자면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에 3002를 고르게 됐다.

숫자의 의미를 풀이하자면 '서른 전에 애 둘을 낳겠다.'는 나의 당찬 포부다.

그래서 그게 이뤄졌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참 아쉽게도 그렇진 못했지만요.


어쨌든 타고나길 이런 성정인데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가장 의미있는 이벤트에 어찌 하나 하나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수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택에는 다 나름의 뜻이 있고 의의가 있게끔 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 부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부케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친구'의 것이라 대답하겠다.

부케를 들고 결혼하는 이는 신부지만 결혼식이 끝난 뒤 신부가 부케를 던지면 받는 이는 신부의 친구, 그러니 곧 친구의 것이 될 부케.

(요즘엔 말려 돌려주는 문화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차치하고) 나는 돌려받지 않을 생각이다.

신부가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는 데엔 행복을 전해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결혼을 앞둔 사람이 앞으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그 마음을 담아 던지는 부케를 다시 돌려받는다는 건 어쩐지 행복을 줬다 뺐는 것 같아 좀 이상하다.


그래서 돌려받지 않을 행복을 꽃에 담아 던질 건데, 기왕이면 많이 많이 행복했으면 하는 사람을 골랐다.

8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주원오빠.


주원과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대학시절 푸르른 잔디 위에 앉아 점심시간이면 함께 햇빛 소독을 하며 이런저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던.

주로 내 첫사랑에 대한 고민상담이었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 같지는 않는 어리숙한 사랑에 서러운 속내를 털어놓을 때마다 그는 내게 자잘한 위로를 건네주곤 했다.

어딘가 풋풋하면서도 따스한 기억.

그때 내 옆자리가 따뜻했던 건 따사로운 봄 햇빛 머금은 잔디 덕분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주원이 따스한 사람이라서였을지 (어쩌면 둘 다 일 수도) 몰라도 어쨌든 그 자리는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뭘 알았겠나 싶은 스무살이지만 그 추억 위로 세월을 켜켜이 쌓다 보니 어느새 나도 오빠도 결혼을 한다네.

각자의 고된 연애사의 끝엔 이전보다는 더 좋은 인연이 기다리기를 늘 바라왔는데, 드디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한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쏘냐.

주원의 결혼소식을 듣자마자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주원에게 부케를 던져야겠다 생각했다.

제안을 하자 오빠도 흔쾌히 좋아해 주었다.


허나 이를 탐탁치 않아하는 시선이 존재했다.

나로써는 성별에 관계없이 오랜 기간 애정을 가진 존재에게 던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주변에서는 하필 던져도 남자에게 던지느냐고 핀잔을 주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남자가 부케를 받는 것은 금기된 일이라며. 어째서 여자친구들을 놔두고 남자에게 던지느냐며.

어른들 보시기에 부적절해 보이고 이상하게 생각하실거라며. 또래가 보아도 안좋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새삼 놀랐다. 세상에, 내 친구들이 이렇게나 보수적이었다니.

그래서 왜? 라고 물어보니 그야 남자니까 란다.

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이 논란의 중심을 거슬러 올라가면 '남녀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난제에 이르게 된다.

혹은 '남녀가 유별하거늘...'로 갈 수도 있고.

아직까지도 심심치 않게 갑론을박하는 문제이니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그 친구들을 설득하기 보다도 ‘내 결혼식이니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겠다.’는 결론이다.

그렇게 극구 반대를 하던 친구들도 종국에는 "남자가 받는 건 좀 그렇지만 주원형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 라며 입을 모아 말했고.


해서 부케를 받을 사람은 고민없이 골랐는데, 오히려 어떤 부케를 던져야 할지가 좀 더 고민이었다.


꽃은 꽃말과 함께 선물하는 거라 했다.

꽃 한송이에도 소중한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싶었기에 여러 종류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덕분에 좋은 뜻을 가진 어여쁜 꽃들을 많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냥 예쁘기만 한 건 만개했을 때의 즐거움, 거기서 끝이지만 꽃이 시들어 지고 난 후에도 꽃말의 의미는 영원히 남으리.

그런 작은 의미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나.

나의 모든 축복을 더하고 더해 주원 부부가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해서 고심 끝에 은방울 꽃을 골랐다.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는 말보다 과연 더 좋은 말이 있을까?


이건 나의 축복 그리고 오빠의 행복이야.

그러니까 말야, 틀림없이 행복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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