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잘 맞는 사람
짝꿍이 감기에 걸렸다.
며칠 전 (ep.13 여성사회자에 나온) 주디와 함께한 저녁 식사, 식탁 위에서 콜록콜록 거리며 인플루엔자를 퍼뜨릴 때 그녀의 입에 마스크를 씌웠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그 감기가 옮은 모양이다.
그녀가 다녀간 다음날부터 짝꿍은 눈에 띄게 시름시름 앓더니 퇴근하고 돌아온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목 끝까지 패딩점퍼를 올려 입고, 금방이라도 부스스 떨어질듯한 허연 각질이 일어난 입술에 퀭한 눈빛으로. 좀비처럼 터벅터벅 집 안으로 걸어왔다.
안 그래도 평상시 이런저런 병을 달고 다니는 병원체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지극정성 간호를 시작했다.
늦은 밤 집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별 거 없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욕조 가득 뜨거운 물을 받아 반신욕을 시키고, 뜨끈한 차도 끓여주고.
각종 비타민을 먹이고, 처박아두었던 가습기와 전기장판을 꺼내 틀고, 끌어안고 있으라고 온수찜질기도 손에 쥐어주고.
감기가 달아날 수 있게 다양한 방법으로 뜨끈하게 몸을 지져주며 옆에서 가스라이팅도 좀 시전 했다.
"나 같은 마누라 없다, 맞지?" (ㅎㅎ)
우리는 보통 아플 때 배우자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한다.
옆에서 나를 케어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고마움.
내가 결혼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작게나마 이런 게 아닐까.. 하며 기꺼이 간호했다.
기왕이면 효과도 좀 있었으면.. 하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아픈 그는 안쓰러웠지만 간호하는 나의 마음은 꽤나 몽글몽글 좋았다.
"난 연민이 많은 사람을 좋아해.
누군가를 꼭 돕고 싶거든.
여태 내가 살아온 바로는 난 그게 행복해.
난 결혼을 해야 되는 사람이다.
가족을 만들어서 그 사람을 챙기는 거에 진짜 행복을 느껴."
- 하트시그널에 출연한 김지영이 한 말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녀에 빙의라도 된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참 좋은 말이야. 그녀가 향유하는 삶의 지향점이 나와 크게 다르지도 않고.
챙겨주면서 행복함을 느낀다는 거.
그리고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나도 행복해진다는 거.
나도 정말 그렇거든.
마침 그녀가 했던 그 말이 지난밤 짝꿍을 간호하는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결혼이라는 거, 어쩌면 나랑 잘 맞을지도?
챙김 받는 것도 좋지만 챙겨주는거 또한 역시나 좋네.
다시 한번 곱씹으며 '결혼 = 역시 잘한 선택‘이라 한번 더 확신했다.
아무쪼록 이렇게 해서 너의 감기가 낫는다면 더 보람차고 참 좋을 텐데..
그렇게 그 밤. 짝꿍은 내게 고맙다 말하며 잠들었고, 다음날엔 혹시나 내게 감기를 옮길까 싶어 늘 하던 모닝뽀뽀도 생략한 채 출근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오늘부턴 내 목도 따끔거리고 붓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번엔 내가 옮았나 보다.
뽀뽀는 안 했지만 한 집 사는 사이에 전염이란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
이런.. 감기는 옮으면 낫는다던데..
(분명 그의 감기가 나로 인해 호전되길 바라긴 했지만, 이렇게 낫길 바란 건 아니었다!)
골골골.. 이제는 내가 고양이도 아니건만 골골송을 부르며 주디플루(감기)와 싸우고 있다.
감기의 순기능은 상대를 챙겨주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역기능은 나까지 옮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결혼은 잘했으니까.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