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보다 우선하는 것
가을가을한 10월의 둘째 주, 드디어 흰 티셔츠에 멜빵바지를 입고 화석을 찾아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나름대로는 ‘화석 발굴단’에 어울리는 패션이라 자부했다.
딱 봐도 찾기 쉬울 것 같은 장소를 골라, 단 한 곳만 둘러볼 계획이었다.
아뿔싸.
예습하며 외워두었던 그 넓은 공터에 도착했건만,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진 속 장소와 똑같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또 거기 같다.
도무지 모르겠다. 흙더미만 가득하고, 주위는 여전히 푸르른 숲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지켜보는 가족들의 눈이 몇 개인가.
나를 믿고 먼 길을 함께 달려온 가족들은 이미 실패를 직감한 눈빛이었다.
물론 나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화석을 찾아도 못 알아볼 수 있으니 너무 기대하지 마.”
하며 살짝 밑밥을 깔아 두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근처 어디쯤이겠지 싶어, 화석이 있을 법한 무른돌을 톡톡 쳐봤다.
의외로 잘 깨진다.
밤새 딸아이와 연습했던, 돌 틈에 일자 드라이버를 꽂고 끝부분을 망치로 내리칠 필요도 없었다.
망치를 들고 이 돌 저 돌을 두드렸다. 의외로 꽤 즐겁다.
묘하게 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다. 다만 돌이 튈까 봐 살짝 무서울 뿐이었다.
겁이 많아 유난히 ‘안전해 보이는 돌’만 골라 두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은 짓이다.
화석이 있을 만한 돌을 두드려야 하는데, ‘안전한 돌’을 찾아가며 깨고 있었다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석은커녕 그 비슷한 것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다. 뭘 알아야 말이지.
어설프게라도 뭔가를 찾았더라면 그 넓은 돌무더기를 전부 뒤집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기온은 29도, 햇빛은 눈부시게 쏟아졌다.
딸이 선물해 준 손수건을 스카프 삼아 머리에 두르고 버텼다.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패션은 무슨. 꾀죄죄하다.
결국 돌들만 잘게 부수며 첫 번째 탐사는 마무리했다.
호기롭게 큰소리치며 계획에도 없던 두 번째 장소로 향했다.
이번엔 큰 길가였다. 산의 돌을 다 깨부술 기세로 망치를 휘둘렀다.
지나가던 동네 주민 한 분이 한참을 쳐다보셨다.
‘이상한 여자’라 생각하셨을 터.
다행히 머리에 두른 손수건 덕분에 얼굴을 가릴 수 있었다.
이번엔 딸도 함께 돌을 두드렸다.
석축 위를 오르다 무릎과 손바닥을 다쳤지만, 하는 짓이 너무 터무니없어 둘 다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에도 화석은커녕 비슷한 형체조차 찾지 못했다.
우리가 두드린 건, 그저 엉뚱한 돌들뿐이었다.
패션까지 갖추고 예의를 다했건만, 화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결국 포항의 밤바다를 보며 하루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열네 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집에 도착하니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화석 탐사 패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화석을 찾는 게 우선이지, 패션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날은 그저, 더위에 진땀 빼고 있는 화석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은 조금 다르다.
가족들과 함께 두드리고, 함께 땀을 흘리며, 즐거운 시간들로 가득 채웠다.
그날은 화석은 찾지는 못했지만, 행복한 하루를 발굴한 특별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