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엄마도 맨날 OOTD 실패야.
옷을 입는다는 건 제게
그저 하루 일과 중 하나일 뿐이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대충 원피스 하나를 걸쳐 입고
아이 셋을 차례대로 붙잡아 옷을 입히죠.
세 번이나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제 차림새 따위는 금세 잊혀집니다.
아이가 하나였을 땐 달랐어요.
오늘은 어떤 옷을 입혀 보낼까,
혹시 어린이집에 같은 옷만 입혀 보내면
관심 없는 엄마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죠.
그래서 귀여운 옷을 찾아 헤매고,
쇼핑몰에 걸린 피팅컷을 그대로 사서
아이를 작은 마네킹처럼 꾸며 보냈던 날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냥, “좀 추운데?” 싶으면
편한 상하복에 잠바 하나 걸쳐 입히고,
비 온다는 뉴스가 들리면
장화나 신겨 보내는 정도예요.
그게 전부인, 패션센스 0점짜리 엄마랍니다.
특히 저한테는 날씨에 맞는 옷을 입히는 일이
가장 어려운 과제예요.
한여름이나 한겨울처럼 뚜렷할 땐 차라리 수월한데,
이런 간절기만 되면 매일매일이
저 스스로도 ‘패션고자’ 인증의 연속이죠.
게다가 어린이집에서 가을 행사를 한다고,
포토존을 꾸며
멋진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던 날이 있었는데요.
하필 그날 아침 햇살이 따갑더라구요.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을
반바지에 반팔 티 차림으로 보내버린 저는…
결국 아이를 ‘바바리맨’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람쥐가 되어 알밤 줍기 이벤트를 하는 날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딸랑구에게 입혀 보낸 건…
하필이면 나시.
결국 한여름 복장으로 혼자
알밤 줍는 컷이 완성되고 말았죠
그날 아침,
“쌀쌀하려나? 아니다, 낮엔 더울 수도 있지.”
혼잣말을 하며 고심 끝에 내린 제 결론은
“나시에 잠바를 입히자!” 였습니다.
뿌듯하기까지 했던 제 선택은
결국 또 하나의 웃픈 현실이 되어버렸네요.
가을을 온전히 느끼러 떠난 나들이에서는,
핑크뮬리밭 한가운데서
아이 가슴팍에 고래가 헤엄치는 상하복이 눈에 띄죠.
결국 또 한 번의 언발란스 패션을 완성해버린 셈이에요.
게다가 딸래미 코디에는 늘
제 마음속 욕망이 살짝 묻어나옵니다.
“딸은 꼭 딸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 말이죠.
그래서인지 딸아이의 옷차림은 어김없이
저의 취향과 집착이 드러나는 룩이 되어버려요.
옷 = 보여지는 것.
아마 그 인식 때문일까요.
패션센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OOTD를 보이면서도
저는 매일같이 남들의 시선을 걱정하곤 했습니다.
혹시 얼룩이 묻은 옷을 입혀 보내진 않았을까,
빨래가 잘못돼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별것 아닌 의문들이 불안으로 커져
제 마음을 조이기도 했어요.
어쩌면 그건,
땅꼬마였던 시절 누군가
제게 던진 돌멩이 같은 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옷 좀 사 입어라.”
그날의 상처는 지금도 종종 악몽처럼 되살아나고,
어쩌면 그 때문에 저는 옷에
더 집착하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아이와 외출할 땐 늘 여벌옷을 세네 벌 챙겼습니다.
외식 후 혹시 음식이 묻거나 음료를 쏟으면,
꼭 식당을 나서기 전 화장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혔죠.
제 집착 때문에 아이가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아이와 맞게 되었어요.
옷이 다 젖어버린 상황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신이 나 흙탕물을 밟고, 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저는 온몸이 불안으로 굳어갔지만,
그때 아이의 한마디가 저를 깨웠습니다.
“엄마, 너무 재미있어요! 엄마도 같이 뛰어요.”
그날 우리에게 남은 건
감기와, 흙탕물에 절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옷가지들뿐이었죠.
하지만 제 마음에 진하게 남은 건,
그 모든 걸 덮어버린 ‘행복’이었습니다.
비 내리는 가을,
저는 지금도 자꾸만 그날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