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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고 커피

여러분, 커피에 대해 알고 가실게요

by 소담


따뜻 미지근한 아메리카노

가을을 상징하는 낙엽은 커피색과 닮아 있다.

나는 따뜻하면서도 미지근한, 약 70도 정도의 연한 아메리카노를 즐긴다.

뇌과학자들은 두뇌 건강을 위해 카페인 섭취를 줄이라고 조언하지만, 커피만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음료는 드물다.

사실 커피는 맛보다 향으로 먼저 다가온다.

커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알아두면, 한 잔의 커피가 훨씬 더 깊고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많은 것들이 그렇겠지만, 커피 또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음료’다.

원두, 온도, 압력의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 익숙했던 한 모금이 전혀 다른 풍미로 다가오게 된다.


바리스타로 일한 지 1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커피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만, 커피에 관한 기본 상식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9 기압의 진실

몇 해 전, 배우 강동원이 커피 광고에서 “9 기압을 모르니까”라는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9 기압으로 추출해 더 깊고 진하다’는 말은 왠지 더 전문적인 커피일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것이 바로 광고의 심리적 효과일 것이다.


사실 ‘에스프레소(Espresso)’라는 단어 자체가 압력에서 비롯됐다.

이탈리아어 Espresso는 ‘press out’, 즉 ‘눌러 짜낸다’는 뜻이다.

이름부터가 압축된 힘으로 내려진 커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9 기압은 커피 풍미의 균형점이라 할 수 있다.

압력이 너무 낮으면 물이 천천히 스며들어 쓴맛이 강하고 밍밍해진다.

반대로 압력이 지나치게 높으면 물이 급히 통과해 신맛이 두드러지고 향이 날아간다.

여러 실험을 통해 9 기압 전후에서 산미·단맛·쓴맛이 가장 조화롭게 형성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전 세계 대부분의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들이 9 bar(기압)을 표준으로 설정한다.

즉, 광고 속 그 브랜드만 9 기압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에스프레소는 9 기압에서 약 25초 내외로 내린다.

짧은 시간 안에 향과 오일, 크레마까지 한 번에 뽑아내는 구조다.

이때 호피무늬 또는 황금빛 거품층, 즉 크레마의 형성도 압력 덕분이다.

9 기압의 힘이 커피 오일과 이산화탄소를 미세하게 섞어 부드럽고 윤기 있는 크레마를 만들어낸다.

이 크레마는 향을 머금고 있어, 맛의 여운을 오래 지속시켜 준다.


카페인 양의 오해

많은 이들이 콜드브루는 부드럽기 때문에 카페인이 적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맛의 진함과 카페인 농도는 별개의 문제다.

카페인의 양은 물과의 접촉 시간, 물의 온도, 그리고 원두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이 기준으로 보면, 추출 시간이 가장 짧은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따라서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한 아메리카노가 카페인이 가장 적고, 그다음이 핸드드립, 마지막이 콜드브루(또는 더치커피) 순이다.


에스프레소는 약 25초 내외로 내려지며, 핸드드립은 2~3분 정도 천천히 추출된다.

반면 콜드브루와 더치커피는 최소 6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까지 저온에서 천천히 침출 되어 카페인이 가장 많이 녹아든다.

즉, 산미가 적고 부드러운 맛 때문에 콜드브루를 ‘카페인이 적은 커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 카페인 함량은 가장 높다.


원두의 분쇄 굵기와 날씨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원두의 분쇄 정도(가루의 굵기)와 무게가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습도와 온도의 변화가 물의 통과 속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커피 내리기는 결국 물의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공기 중 습도와 온도가 바뀌면 원두가 머금는 수분의 양이 달라지고, 입자 사이의 저항도 함께 변한다. 그 결과, 추출 속도에도 차이가 생긴다.


습도가 높은 날(비나 눈 오는 날)은 원두가 수분을 머금어 입자가 불고 물의 흐름이 느려진다.

이럴 때는 조금 더 굵게 분쇄해야 적정 추출 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건조한 날(가을 오후)은 원두가 쉽게 마르면서 물이 빠르게 통과하므로, 조금 더 곱게 분쇄해야 향미가 충분히 우러난다.


밤과 낮의 온도 차가 큰 날에는 오전과 오후의 분쇄 설정을 달리해야 할 때도 있다.

결국 분쇄도는 습도의 조절기와 같은 역할을 하며, 하루의 공기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변수다.


일정한 맛

물론 분쇄 굵기만으로 일정한 풍미를 유지할 수는 없다.

로스팅 이후의 이산화탄소 배출 정도(디가싱)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날씨라도 볶은 지 2일 된 원두와 6일 된 원두는 같은 세팅으로 내려도 맛이 다르다.


또한 머신의 온도, 물의 온도, 투입량(도징량)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숙련된 바리스타는 추출 시간과 크레마의 색, 맛 살피며 세밀하게 조정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요즘은 원터치 방식의 머신이 보급되어 분쇄 정도, 도징량, 추출 시간까지 자동으로 세팅된다.

버튼 한 번이면 전문적인 커피를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계는 날씨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결국 양질의 커피는 수치가 아니라 바리스타의 손끝에서 비롯된다.


가을의 커피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 속에서 완성된다.

그 복잡한 계산 속에도 결국 남는 것은 향이다.

하루의 공기를 읽고, 물의 흐름을 관찰하여 만들어지는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야말로 바리스타의 혼을 담아낸 작품이다.


아는 만큼 음미할 수 있는 커피

온도와 압력, 그리고 바람의 변화를 이해할수록 그 한 모금이 주는 감동은 더 깊어진다.

오늘의 커피가 어제와 다른 이유, 그건 바로 하루가 다르게 단풍이 물들어 가고, 어제 보다 더 커피와 친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마신 것이 평범한 커피였다면, 오늘은 입안에 머금어 맛을 음미하며 미소가 더해지는 커피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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