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감각을 믿다
따뜻한 카페라테 주문이 들어왔을 때였다. 학원에서 우유를 스티밍 하는 방법을 배울 때는 절차가 분명했다. 우유를 담은 스팀피처에 스팀봉을 넣고, 적당히 공기를 주입한 뒤 롤링을 통해 매끄럽게 만들고, 손끝으로 피처의 온도를 느껴 적정 온도가 되면 스팀을 멈춘다. 그다음 커피가 담긴 컵에 우유를 붓는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하게 순서가 정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실전이었다. 내가 만든 라테는 스팀 과정에서부터 삐걱거렸다. 어느 정도 공기를 넣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생각보다 오래 스팀을 돌려버린 것이다. 치익, 치이익, 소리가 카페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내 손끝은 이미 뜨거움에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고, 멈춰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려 일명‘개 거품‘이 되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그분’이 말했다.
“스팀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급하게 음료를 완성해 손님을 보내고는, 얼른 되물었다.
“그럼… 스팀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스팀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나는 구겨진 자존심 따위는 내려놓고 다시 용기를 내 물었다.
“그럼, 스팀을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러나 그분은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스팀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그 대화는 마치 고장 난 테이프처럼 이어졌다.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차라리 한 번만이라도 시범을 보여주면 좋았을 텐데, 끝내 그분은 시범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나는 혼만 나고, 해결책은 얻지 못한 채 스스로 우왕좌왕했다. 결과는, 거품이 너무 두껍고, 우유와 커피가 따로 놀아버린 어설픈 라테뿐이었다.
당시에는 속상함이 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분 또한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소통이 단절되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했다. 그날의 실패는 한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귀와 손끝을 믿게 되었다. 스팀 소리만 들어도 지금이 공기 주입 단계인지, 롤링이 잘 되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품이 고르게 돌고 있을 때는 잔잔한 소리가 난다. 카푸치노를 만들 땐 거품이 좀 더 살아 있어야 하고, 라테는 부드러운 크림처럼 흘러야 한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물론 실제로 눈을 감으면 큰일 나지만) 어느 순간에 스팀을 멈춰야 할지 알 수 있다.
돌아보면 그날의 실수와 답답했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완벽하게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오히려 나는 스스로 더 집요하게 귀를 기울이고, 손끝의 감각을 믿으며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은 칭찬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라테 아트를 성공했을 때, 동료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오, 스팀 정말 잘 나왔는걸요!”
그 짧은 말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줄 몰랐다. 혼만 나던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늘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그 작은 칭찬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칭찬은 기술보다 빠르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그날 이후 나는 동료들에게도 사소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작은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것은 부끄러운 과거가 될 수도 있고,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라테 한 잔 속에서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실수를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뇐다. “실수는 질문이다. 그리고 칭찬은 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