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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월급봉투를 처음 받아 들던 순간

여전히 돈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by 소담


첫 월급봉투를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 적잖이 실망했다. 입사하기 전, 친구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시급이 얼마이고, 한 달 근무 시간으로 계산하면 대략 얼마쯤 될 거라고 했다. 계산 방식도 알고, 예상 금액도 들었지만, 그 모든 말은 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두 달만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이 앞섰기에,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봉투를 열어 실제 금액을 마주하자, 설명으로만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논술교사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상 앞에 앉아 학생들에게 글쓰기 주제를 제시하고, 함께 문장을 다듬으며, 토론을 이끌던 시간들. 물론 수업 준비에 공이 들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앉아서 하는 일이다. 말로 학생들을 이끌고, 가끔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어주고 토론을 하면 되었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 어려운 일은 딱히 없었다. 그런데 그때 받던 급여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반면, 카페에서의 일은 온종일 서서 움직여야 했다. 뜨거운 커피를 내리고,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음료를 만들고, 때로는 불편한 표정과 날카로운 목소리를 감당해야 했다. ‘감정 노동’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뼈저리게 실감했다. 웃음을 유지해야 하고, 목소리를 다정하게 가꿔야 했으며, 마음속 불편함은 감춘 채 “네, 감사합니다”를 반복해야 했다. 게다가 동료 직원들, 특히 장애인 직원들을 케어하며 함께 가는 데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더 필요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더 지쳤다.


그 모든 노동의 대가로 받은 금액이 고작 이 정도라니. 그 순간,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은 부탁을 들어주며 기꺼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월급봉투를 받아 드는 순간 이상하게도 고마움보다 알 수 없는 미움이 밀려왔다. ‘왜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을까? 왜 나는 이 선택을 한 걸까?’ 스스로에게도, 친구에게도 괜한 원망이 솟구쳤다.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두 달이 아니라 꼬박 1년은 이어졌다.


나는 매달 같은 급여를 받으며, 동시에 같은 무게의 실망과 혼란을 반복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현실에서 돈은 분명 중요한 기준이었다. 거기에 남편은 하루 종일 일어서서 일이 무리가 된다며, 자꾸만 사표를 내라고 강요했다.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자주 떠올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 덕분에 나는 조금씩 다른 눈으로 나의 하루를 바라보게 되었다. 논술교사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서, 단순히 급여의 많고 적음을 넘어, ‘일의 의미’에 대해 묻게 된 것이다.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의 보람과, 카페에서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내리며 겪는 성취감은 전혀 다른 결이었다. 전자는 성취를 전해주는 일이었다면, 후자는 성취를 나누는 일이었다.


물론 그때는 미움과 불만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 감정 속에서도 내가 배운 것을 발견했다. 돈은 삶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존엄과 의미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던 장애인 동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웃음을 건네며, “오늘은 제가 먼저 해볼게요”라고 말할 때, 그 순간만큼은 월급봉투의 무게가 조금 덜 느껴졌다.


지금도 나는 그 첫 월급봉투의 기억을 생생히 안고 있다. 당시의 실망과 미움은 부끄럽지만, 동시에 나를 솔직하게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나는 그때의 나약함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단순히 금액으로만 평가하지 않는 눈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돈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내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급여의 숫자가 아니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첫 월급봉투는 내게 질문을 남겼다. “네가 원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이냐?”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여전히 일하고,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나처럼 혼란을 겪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처음의 아쉬움, 그 뒤편에는 새롭게 발견할 가치가 숨어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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