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언제 왔고, 언제 가는지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
추위보다 더위에 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여름의 감성보다 겨울의 감성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여름의 '시원함'보다 겨울의 '따뜻함'이 더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못 견디는 고통 속에서 상반된 행복을 느끼는 걸까.
어떠면 내가 여름에 더 강한 건 적응의 동물로서 기능적 성장을 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프리카(대구)에서 나고 자라면서 웬만한 더위는 익숙한 탓이다.
게다가 어릴 적 엄마 몰래 에어컨을 한번 틀었다가 호되게 혼나고 나서부턴 더위에 더 체념했는지도 모르겠다.(난 에어컨을 틀면 실외기에 물이 흘러나오는지 몰랐다.)
돌돌돌 거리는 선풍기, 엄마가 깍둑썰기로 잘라준 수박, 버티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했던 여름.
이제 한참 어른이 되어 떠올리는 어릴 적 여름은 멈춘 것 마냥 느리다.
나는 어느덧 나름 제 밥벌이를 하게 되어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켤 수 있는(결정권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오롯이 계절을 느낄 기회도 잃어버린 것 같다.
여름이 언제 왔고, 언제 가는지 그저 가벼운 옷차림 외에는 계절을 살펴볼 여유가 턱없이 부족하다.
몇 년 전 누군가가 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앞으로 우리가 이 계절을 만날 기회가 50번도 채 남지 않았다."라고.
나에게는 이제 몇 번의 여름이 남았을까.
푸릇한 풀냄새, 녹아가는 아이스크림, 산책길에 들리는 매미소리.
앞으로 몇 번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 여름이 주는 감성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제 곧, 여름이 올 테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만남에 조금 더 집중해 봐야겠다.
잘 지내보자,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