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하나의 내 모습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만들어 보이고 싶었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싫어하고 거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었다. 이게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 지 모른 채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건 다른 말로 내가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말과 같다. 실은 내 안에는 여러 모습의 내가 있고 그 중에 싫어하는 나의 모습 또한 존재할텐데 이를 거부하니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 안에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지금까지 모범생, 착한 딸, 그리고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려는 노력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싫어하는 나도 나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또한 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없이 화를 내면서 나를 지키려 해왔다는 것도 몰랐다. 싫어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나의 평안은 계속 깨지고 있었다.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화냈고 내가 의도하는 바에 맞게 행동하지 않아도 화를 냈다. 왜 이러는지 본질을 파악하지 않은 채로 대화법을 배우고 내게 사랑을 주려고 해봤자 화를 내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화는 표면 감정이자 가짜 감정일뿐 실제 내 마음 속의 진짜 감정은 외로움, 수치심, 그리고 창피함이었다는 걸 감정을 공부함으로써 깨달았다.
이를 깨닫고 나니 지금까지 왜 그렇게 가족, 친구 그리고 연인에게 화를 냈는지 알게됐다. 특히 남자친구와 싸우면 대부분 그가 잘못해서 싸운다 생각했고 화를 낼 만해서 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나의 진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드러내길 거부하니까 자꾸 화로 감정 표현을 대신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외로워하는 나, 창피한 나, 그리고 내 말만 옳다고 고집부리는 나를 드러내는 걸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이 깨달음을 그에게 전했다. 그동안 나를 위해 아무리 내가 화를 내도 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면서.
정말 어려웠지만 막상 이렇게 진심을 전하고 나니 남자친구 또한 변했다. 애정표현 하는 걸 쑥쓰러워하던 그였지만 이렇게 노력을 한 자체가 자신에겐 큰 감동이며 내가 더 좋아졌다고 말해준 것이다.
'아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드러내도 날 싫어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저 순간에 딱 스쳤다.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싫어하는 나도 나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고 내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선한 나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악한 나의 모습 또한 나라고 말이다.
내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연습도 해야 했다. 이 연습 없이는 아무리 대화의 기술을 익힌다 한들 절대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을 테니.
이 노력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일이다. 아마 평생동안 노력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노력하고싶다. 나의 모든 모습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써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