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라틴어 수업
이 책을 읽고 나서 진정한 스승이란 이런 분을 가리키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에 매료되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이신 한동일 교수님은 제자 한 명 한 명과 소통하시는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을 아끼시는 진정한 교육자라는 인상이 뇌리에 확 박혔기 때문이다. 강의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집필을 돕기 위해 제자들이 힘을 합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너무나 좋은 내용이 많아서 글이 길어질 순 있겠지만 그래도 전부 소개하고 싶다.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대학 수업의 첫 시간을 들어갈 때마다 가장 듣기 싫어했던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왜 이 과목을 수강 신청했니?"였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도 있지만 맘에 들지 않는 이유를 들은 교수의 타박 때문이었다. 겨우 그런 이유냐면서 그러니까 너네가 안 되는 거라는 식의 타박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이 교수님 정말 멋지신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며 감동받았다. 처음으로 뭔가를 시작하는 데 있어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음을 그리고 멋있어 보이기 위해 시작해도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냥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더라도 난 작은 시도를 해나갈 것이다. 예전에는 거창한 이유조차 없는데 뭣하러 하냐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이유나 목표가 없어도 시도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툼이고 데펙투스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메리툼과 데펙투스는 라틴어로 장점과 단점을 가리킨다. 내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단 사실을 명심한 채 내실을 단단히 다지는 것임을 일러주는 내용이다.
난 이래서 이걸 못하고 저래서 저걸 못 한다고 말하면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쯤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실력을 키울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학은 취업을 위해 졸업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 삶을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대학 생활 동안 맹목적으로 어떤 목표부터 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죠. 봄철의 아지랑이가 무심히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고 멈춰 서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이듯이, 내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스스로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이죠.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라는 말은 많이 들으며 크지만 스스로를 자세하 관찰해보라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성장 과정 내내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날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나에 대해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아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대학이 정말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또한 진심으로 바라본다.
사실 인생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중 많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도 계속 그럴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전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냥 “쌩 까”라고요. 학생들의 지친 얼굴에서 웃음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뭔가 근엄하고 엄숙하게, 혹은 진지하게 조언할 줄 알았는데 ‘쌩 까’라니요. 그것도 선생이 말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제자들에게 쌩 까라며 말해주시는 교수님이 이 분 말고 또 계실까? 읽는 내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가끔은 이런 말이 오히려 진지한 충고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cum’하고 ‘더불어cum’하는 걸 즐거워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와 ‘더불어’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함께’하고 ‘더불어’하는 일에 무심하고 귀찮아하지 않길 바랍니다. 내 작은 힘이나마 필요한 곳엔 ‘더불어’ ‘함께’ 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주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지금보다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요?
혼자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만큼 더불어 사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 또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으며 혼자 있고 싶다고 느꼈을 때가 많지만 이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역시 사람임을 알기에.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현재에서 충실하게 살아갈 것.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장담하지 않기에.
우리 사회는 어떤 한 개인이 윤리적으로 잘 살고 싶어도 살기 힘든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불법을 부추기고 합법엔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무능한 것이고 약삭빠르고 초법적으로 살면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지금 고통이 턱밑까지 차오른 이들에게 해봐야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라 해도 “그런데 나는 왜?” “그러면 어쩌라고?” 하는 울분에 찬 볼멘소리밖에 돌아올 게 없습니다. 이들의 울분과 아픔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주기 위해서 어른들은 위로할 일이 아니라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지원사격을 해줘야 해요.
예전에는 힘듦을 알아주는 것이 진짜 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 잠깐 기분이 나아질 뿐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계속 힘든 것은 마찬가지임을 알았다. 진정한 어른의 역할이란 위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작게나마라도 행동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할 장소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눈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될 겁니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스쳐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겁니다. 한순간 스치는 바람이나 어제와 오늘의 다른 꽃망울에도 우리는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 권을 읽더라도 얼마나 깨어있는 채로 읽는가이다. 진심으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 없이는 수백권을 읽는다 해도 모멘텀은 절대 찾아올 수 없다. 그래서 난 열린 자세로 책을 읽고 책에서 얻은 배움을 실천하며 살아가려고 노력중이다.
어쩌면 문제는 욕망하는가 아닌가에 있지 않고,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있지 않은가 하고요.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달릴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 욕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욕망하는 그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욕망하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내 서평을 읽고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갖기를 내 캘리와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잠시나마 미소짓기를 나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지혜로워지고 성숙해지기를 욕망한다.
Letum non ominia finit.
레툼 논 옴니아 피니트.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툼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는 걸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한다는 건 그들보다 뛰어나서도 나이가 많아서도 아닌 그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임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계속 이 글귀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