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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원 석사 입학을 포기했다

한 번쯤 꿈꿔왔던 미국 석사 유학 생활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by 반전토끼


학부 시절, 졸업 후에 대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제약조건 때문에 취직을 바로 했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가지 않은 길이라는 유명한 시(詩)도 있듯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자꾸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미국에 오면서 남편은 바쁜 유학생활을 보내느라 열중했지만, 그에 반해 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내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지 번뇌에 휩싸인 시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미국에서의 석사 유학이었다. 내가 사는 캠퍼스는 말 그래도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에 바로 석사 지원 준비에 돌입했다. 공부는 해봤지만, 한 번도 시험 본 경험이 없는 토플(IBT) 준비부터 시작했었다. 내 영어 실력이 쇠퇴한 것인지 아니면 토플 시험 수준이 높은 것인지, 점수는 생각보다 쉽게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쓴 전략은 단기간에 시험을 자주 봐서, 목표 점수를 얻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비용은 많이 썼지만, 다행히 목표 점수는 받을 수 있었다.


토플에 대한 한 가지 여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토플의 본 고장이라고 하는 이곳의 시험장소 및 시설은 생각보다 굉장히 열악(?)했다. 한국에서 토플시험을 본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시험장은 굉장히 쾌적하고 깨끗하다고 들었다. 아마도 토플 수험료가 타 시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자주 이용한 시험장은 캠퍼스 내의 학교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구형 586 모델이 생각나는 추억의 컴퓨터와 있으니만 못한 종이 가림막은 아직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수험료는 한국보다 조금 저렴한 정도인데, 이런 환경에서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이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토플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이후에 SOP(학업계획서) 및 면접을 준비했었다. 당연히 영어로 면접을 진행하니, 부담스러운 것은 말도 못 했고, 지원 전공 특성상 제2외국어도 같이 준비했어야 해서 힘에 부쳤었다. 그래도 SOP를 준비하면서, 내가 살아왔던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꾸려나가야 하는지도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앞만 보고 준비했었던 여정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모두 끝나 있었고, 이제는 합격여부만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을 보고 2달 후에 합격 어드미션 레터를 받았고, 그 순간만큼은 날아갈 듯이 기뻤던 것 같다. 아마 낯선 땅에 와서 내가 최초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기뻤던 순간도 잠시였고, 레터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합격은 했으나, 재정지원(장학금)은 어렵다고 적혀있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깊은 땅 속으로 내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석사 과정에서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지원한 학교 및 전공은 재정지원이 가능하다고 해서, 해당 학교만 지원을 한 것인데, 결과는 예상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내 감정상태는 널을 뛰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라도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깔끔히 포기해야 하는가"의 명제를 하루에 수백 번 생각하면서, 내 마음은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포기하자니 그동안 해왔던 노력들이 아깝고, 장학금 없이 가자니 재정적인 부담이 너무 큰 것이다.


디시전(입학 여부 결정) 기간인 한 달 정도 치열하게 고민해서 낸 결정은 "포기"였다. 신랑도 유학생인 마당에 당장 큰 목돈을 융자받을 수 있는 곳도 없었고,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인 부담을 안고 가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학교 측에 거절 의사를 보낸 이후에 한동안 무력감에 빠졌었다. 그리고는 "내가 목돈이 있었더라면" 등의 가정을 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에 대해서 상상하고, 기회를 외부요인에 의해 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분명,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어느 순간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한 결정인데도, 다른 사람(주로 남편)한테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거나 삶의 태도가 이전보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변해있었다. 이러한 내 모습을 인식한 이후부터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기보다는 몸을 움직였었다. 예를 들면,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산책하기, 브런치 글쓰기 등과 같은 활동들이다.


위와 같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고, 관심 있는 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삶에 대한 태도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이전보다 더 집중하면서 찾게 되었고, 지금은 나만의 로드맵을 구상해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에피소드도 어느덧 1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사람의 생각이 과거에만 머문다면, 그 과거에 영원히 갇혀서 미래를 볼 수 없다"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과거가 좋든 나쁘든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 우리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markus-winkler-4o0-XbicJ6E-unsplash.jpg 인간은 미래를 보고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라고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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