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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Nov 23. 2019

앞으로가 더 행복하기를.


때로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애정 욕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의지할 때, 나를 필요로 할 때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면서 사실 나도 그 이상의 사랑을 받는다.


아이들은 하나를 주면 온 마음을 내어준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연필을 주워주며 따뜻하게 웃기만 해도,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아이들은 어느새 온 마음을 나에게 내어준다.

온 마음으로 나를 믿는다.


예전에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최고의 선생님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을 했다.

내가 너희에게 좋은 사람이었기를, 잊지 못할 사람이기를, 사랑받을만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것으로 교사로서 내 위치를 검증받으려 했다.


복도 벽에 붙은 모기를 신발로 내리쳐 잡으려는 아이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아, 저 벽화에 신발 자국 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스쳤고, 모기 잡지 말고 놔두자.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날 보고 모기를 한 번 보더니

너 오늘 선생님 덕에 살았다.

라고 했다.

아마 내 말이 모기가 불쌍하니 놔 주자는 소리로 들린 것 같았다.


아이의 말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가

무심결에 내가 한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했다.

나를 무조건 믿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가.


나는 사랑이 고파서 너희에게 잘해줬을 뿐이야.

언젠가는 이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을 때가 올까.

너희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기 위해

나도 너희들 앞에서 연기하듯 생활했었다고.

너희가 집에서보다 내 앞에서 더 인정받으려 하듯, 더 잘하려 하듯

나도 그런 날들이 많았다고.


지금껏 내가 만난 수많은 아이들은 모두가 내 내면의 거울들이었다.

몇몇은 피하고 싶었고 몇몇은 안아주고 싶었고 몇몇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나는 어느 정도 연기를 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란다.

무섭지 않은 착한 사람이란다.

그러니 나에게 좋은 학생이 되어주렴.

나에게 사랑을 주렴.


최근까지도 나는 아이들이 나를 가장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해주길 바랐다.

중학생이 된 제자들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가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한다고 했을 때,

서운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너희에겐 내가 더 이상 소중하지 않구나.라는 유치한 마음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좋은 선생님'이라는 명함을 갖기 위해 그동안 나는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지.


내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사랑이 나오는 것인데

쥐어짜 낸 노력을 스스로도 진짜라 믿을 정도로 보이는 것에 애쓰며 살았다.

이제야 드디어. 아이들을 보면 다른 마음이 든다.


너희의 앞날에 나보다 좋은 선생님이 많기를.

좋은 사람 많이 만나기를.

앞으로의 날들이 지금보다 행복하기를.

너희들 덕분에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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