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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Dec 14. 2019

내 몫의 소란함

아침에 눈을 떴다. 내가 겪은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꿈속에서 나는 서러운 마음에 누군가의 품에 안겨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눈물의 따뜻함과 손등으로 닦아내는 콧물의 감촉까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찝찝함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꿈속의 나는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무엇이 그렇게 오열할 정도로 힘겨웠을까.


살면서 무너져 내리듯 슬픈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 기억들이 아직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당시에는 엄청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스스로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이 정도 일은 겪어. 나만 힘든 게 아니야.’

이별이든 관계에서의 갈등이든 나는 스스로에게 그 말을 했다. 때로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투정 부리지 말자.’라고도 생각했다.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진 내 동생에게도 나는 비슷한 말을 했다.

오래 사귄 연인이 결혼까지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상대가 막 취직을 했을 경우 헤어지는 연인도 많다. 어찌 보면 너의 경우도 참 예측 가능하고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마치 깨달은 사람인 척, 다 아는 사람인 척하면서 동생에게 위로를 가장한 쓸데없는 조언들을 했다. 내가 나에게 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아픔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아팠지만 아프지 않은 척 하기 급급했다. 빨리 괜찮아지고 싶었다. 나에게는 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에는 각자 자기 몫의 소란함이 있다.

나는 내 몫의 소란함을 고스란히 느끼기가 두려웠다. 너무나 아파서 피하고만 싶었다. 괜찮고 행복한 일들로 아픔들을 덮어버리고 얼른 괜찮아지고 싶었다. 삶이란 소란스럽다가도 금방 잠잠해지는 거라고. 모두가 다 이렇게 산다고. 그러니 힘들어하지 말자고 억지 위로를 했다. 사실 그것은 채찍질이지 위로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떤 하루는 너무나 고요하고 잠잠한 마음이라는 것이 오늘은 ‘꿈’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잊었다 여겼던 과거의 아픔들이 떠오르고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묻어버리기 급급했던 일들도 떠올랐다.     


가만히 앉아 소란함에 귀를 기울였다. 두렵고 아팠고 여렸던 날들의 내가 내는 소리였다. 

사실은 너무 두렵고 외롭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거대해 보이고 나는 너무나 작고 여리다고. 시간은 너무 빠르고 내 발걸음은 아주 느려서, 제대로 발자국을 내기도 전에 바람에 쓸려버릴 것 같다고. 지난 아픈 기억들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무작정 괜찮다는 말을 했다.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지나간 시간 속에서 버티느라 수고했다. 여전히 그 아픔들을 묻느라 수고했다. 아주 작은 폭포도 자기 몫의 요란한 소리를 내듯, 나의 소란함도 나에게는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내가 잘못 알았다고. 너의 아픔은 남들의 아픔과는 당연히 다르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실컷 아픔을 느끼라고. 너는 네 몫의 소란함을 이겨낼 만큼 강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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