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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Dec 08. 2019

위로가 서툰 사람

 며칠 전, 직장 선배의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늘 하던 대로 아침밥을 차리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평소 지병도 없고 건강하셨기에 가족들은 황망하기만 했을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선배를 보자마자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떤 말로도 슬픔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괜히 단단히 다잡은 마음을 흔들어 놓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어색하게 다가가 손을 잡고 '오셨어요.'라는 말을 하며 가볍게 인사를 하는 동안, 다른 동료들이 오더니 자연스럽게 선배 주위로 왔다. 누군가는 끌어안기도 했고 누군가는 수고했다는 말을 하며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선배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위로에 미숙한 인간인지를 실감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나의 위로를 받고 혹여나 오히려 기분 나빠지지는 않을지를 먼저 고민했다. 위로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더 슬프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매년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는 친구 주변을 둘러싼 아이들에게 실컷 울게 내버려 두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지극히 내 위주의 생각이었다. 위로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내가 생각한 위로의 방식은 전혀 따뜻하지 못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혼자 헤쳐 나가는 것’ 임을 강조한 위로는 아이들에게 진짜 위안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릴 때 나도 자주 울었다. 어른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울었던 적도 많았다. 내가 이렇게 아프니 나를 위로해 달라고, 나를 좀 더 봐달라고 울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가 바랐던 것은 슬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펑펑 울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누가 와서 먼저 손 내밀어 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도 혼자 슬픔을 헤쳐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껴보고 표현해 보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감정은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솔직하게 드러내면 다른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드러낸 감정들이 오히려 내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정을 감추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 역시 위로받는 것을 꺼렸다. 타인이 내보이는 마음이 진심이 아닐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를 지키기 위해 갑옷처럼 두른 ‘자존심’이라는 것이 위로는 약한 사람만 받는 거라고 여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장 선배가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위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지만 삶이 무너질 것처럼 아픈 순간, 선배가 바랐던 것은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품어주는 따뜻함이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아파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상대에게 위로할 준비는 다 된 것일지도 모른다. 위로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진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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