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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Dec 03. 2019

의도치 않은 강요

지난주, 드디어 학예회가 끝났다. 학예회 준비를 하느라 매일 1시간씩 아이들과 연습을 하곤 했다.

우리 반만 연습할 때는 나름대로 재밌었다. 문제는 다른 반과 함께 강당에서 연습을 하면서였다.


다른 반 공연을 지켜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 반과 비교가 됐다. 우리 반 아이들이 더 나은 것 같으면 안심이 되고 왠지 부족해 보이면 화가 났다. 그 화는 내가 원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겉으로 화를 티 내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아이들은 느낄 것이다. 말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굳으니까.

속 좁은 내가 부끄러웠다.


강당에서 돌아와서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 잘했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눈치 보는 아이들까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내일부터 학예회 특훈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옹졸하고 속 좁은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동시에 학예회 같은 보이는 행사는 도대체 왜 하는 건지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 안에서 하루 동안 분위기에 휘둘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평소의 나는 학예회 같은 거 없어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신경 쓰였던 걸까. 대답은 간단했다. 비교되는 게 싫으니까. 다른 선생님들이랑 학부모님들이 저 반은 왜 저렇게밖에 못 하냐고 수군대는 게 싫으니까. 그 사람들이 평가가 왠지 교사로서 내 능력에 대한 평가인 것 같으니까.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내 성과를 증명해주길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오늘 하루 나는 아이들에게 소통하지 못하고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아마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아이들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든 아이들이 남들 앞에서만큼은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


예전의 나는 그런 말을 많이 했었다.

'다른 반 보는데서는 줄 좀 똑바로 서라.'

'다른 선생님 앞에서는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

이건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남들에게 좋게 보이고 싶은 내 마음의 표출일 뿐.

그러고 보면 예전의 나는 진심으로 '질서'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말의 저변에는 다른 어른들이 보기에 우리 반이 좋아 보였으면 좋겠다는 동기가 깔려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갑옷 삼아 나는 내 약점을 감추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 교사라는 일을 하면서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나는,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을 뿌리 뽑지 못해 습관처럼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해버렸다. 


진짜 교사의 능력은 무엇일까. 어쨌든 해야만 하는 학교 행사에서 아이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다른 반 보다 못하더라도 뭐 어때. 우린 즐겁게 최선을 다 했는걸. 하고 웃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들이밀어 내 능력을 검증받으려는 대신 너희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너무 멋졌어.라고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내가 당연스레 믿어 온 것들 중 나 자신을 감추기 위한 것들이 아직도 많다. 그리고 그게 나도 모르게 감정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나서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일상의 불편한 감정들에 나는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내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좋은 교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꾸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면 더 나은 교사가 되는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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