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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Nov 29. 2019

더 나은 사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다.

서툴고 투박한 사람의 진심을 담은 고백.

영화 속에서 서툴고 부족하고 비참했던 사람들은 함께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알아가고 진심을 밝히고 원하는 것을 향해 행동을 옮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누군가와의 깊은 관계를, 투박하지만 나만은 알아보는 진심을 절실하게 바랐던 날들. 나는 이 영화의 명대사를 좋아해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꼭 그 문구를 써넣었다. 내 마음을 전하는 나름의 가장 세련된 방식이었다.


나에게 '안정'과 '사랑'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였다. 깨지지 않는 굳건한 관계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안정과 사랑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는 힘들 때 무조건 옆에 있어주고 평생 서로가 최우선이고 절대 배신하지 않고 싸우지도 않는 그런 관계였다. 말 그대로 이상일뿐 현실이 될 수 없는 모양새다.

갈등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두려움이라 최대한 싸움을 피하고 무조건 상대에게 맞춰줬다. 나만 내색하지 않으면 이 관계는 깨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의 내가 오늘 본 영화의 유명한 대사에 꽂혔던 이유도 사실은 깊은 관계들이 나에겐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관계는, 진짜 사랑은 서로가 있음으로 인해 완벽해지는 것이기에 서로를 향한 희생과 배려는 필수라고 여겼다.


서로가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괜찮은, 절실하지 않은 사이가 오히려 진짜 괜찮은 관계일 텐데 과거의 나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두려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 지나친 노력을 기울였다.

어째서 외로움이라는 것은 상대가 없이는 채워질 수 없다고 여겼던 걸까.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이 나를 더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소중한 사람에게 절실했던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감동받을지, 어떻게 하면 나를 보고 웃을지, 뭘 하고 시간을 보내면 상대가 즐거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든 계획은 완벽해야 했고 그래서 매번 힘들고 지쳤는데 그 시간들을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관계'가 되는 과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바라는 것이 많았던 나는 혼자 상처 받고 또 기대하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모든 관계는 결국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끝맺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영화의 제목이 오늘만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썼던 그 시간들은 지나고 나니 나를 가장 상처 입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간들이 있어 더 단단해진 것은 맞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겪지 않았어도 괜찮을 아픔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 대부분의 시간 동안 혼자다. 신경 써야 할 관계만 신경 쓴다. 굳이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희생하지도,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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