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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Dec 22. 2019

눈앞의 허들

살아오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린 경우는 잘 없었다. 간혹 그렇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결국은 결말이 좋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사소한 일상의 실패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큰 꿈은 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큰 기대는 대부분 실망으로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구석이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늘 그림자를 자처했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것이라고, 나는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니 어떻게든 평균치의 삶이라도 살자고 다짐해왔다.   

 

‘평균치의 삶’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나에게는 무거웠다. 내 나이 또래가 가진 만큼의 돈은 모아 둬야 하고 삶의 단계에 따라 해야 할 일도 있었다. 나는 또래에 비해 취직은 빨랐으나 다른 단계에서는 이미 뒤처진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여전히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삶'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정한 수많은 허들마다 나는 번번이 가로막히는 기분이었다. 타고난 운과 끼로 수월하게 허들을 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눅 들었다. 모두의 인생에 어느 정도의 고난은 있다지만 나에겐 내 눈앞의 허들이 가장 높고 촘촘해 보였다. 하나 넘으면 바로 또 하나.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넘어가지를 못했다. 타고 난 운이 없다며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학교라는 곳은 등수를 매기는 것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노력’ 해야만 내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나보다 노력하지 않아도 수월하게 높은 등수를 받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태연한 척했지만 은연중에 자괴감을 느꼈다. 미술도 음악도 체육도 타고난 아이들보다 잘하지 못하고 잘할 가능성도 없으니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는데,  난 이마저도 노력해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나는 ‘노력해야 이룰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타고난 끼가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들의 삶은 왠지 나보다는 수월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벽을 더듬으며 나아가듯, 삶을 무작정 버텼던 날들이 있었다. 내 삶에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고 희망도 없고 그저 사라지고만 싶었던 날들. 그때의 나는 버티고 또 버티면서도 나름의 노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삶에 대한 한줄기 희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평균치의 삶에 이를 수 없다는 극단적인 마음 때문인지도.    


그 시절의 나에게 문득 미안해진다. 끼도 없고 타고난 운도 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 눈앞의 허들을 피하지 않고 넘어왔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넘어왔는데. 내가 바랐던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여전히 뒤처진 것 같다고 무작정 그 모든 시간들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다.

   

내 눈앞의 허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지나온 길들을 돌아본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무작정 내 삶을 탓하며 애처롭게 허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난날의 내 수고로움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이어질 나의 노력을 믿어 보는 것이다. 지금껏 이어온 나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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