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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Dec 28. 2019

어느 것에도 이르지 못했다.

‘어느 것에도 이르지 못했다.’

평균치의 삶에 집착하는 동안, 내가 내린 내 삶에 대한 평가였다.    


아주 많이 노력해야 중간은 갈 수 있다는 삶에 대한 부담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년이 올라가면서 가난은 왠지 모르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되었다. 반에서 유일하게 내 방이 없는 아이, 아빠가 직장 없이 매일 집에만 있는 아이, 돈 때문에 걱정하는 아이가 나라는 사실이 싫었다. 무작정 피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공부는 나에게 ‘중간치의 삶’을 살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 와중에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생각은 가족들에게서 온 무언의 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처럼 살기 싫으면 공부하라는 말, 커서 부모에게 번듯한 딸이 되라는 말. 그 모든 말들이 나의 불안이 되었다. 

   

또래보다 일찍 직장을 잡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연애를 해도 불안했다. 행복해야 할 모든 순간마저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았다. 지나고 나니 나는 나 스스로를 그런 행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 행복도 얼마 가지 않을 거라고, 이런 좋은 사람이 나와 계속 만날 리 없다고, 이런 것들은 밝고 해사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불안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나는 또래들이 가진 돈에 비해 돈도 얼마 모으지 못했고 집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와 비슷한 삶을 살기 위해 집착했는데 그것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허탈했지만 동시에 자유롭기도 했다.


어찌 보면 나는 이미 평균의 삶을 위한 경쟁에서는 뒤쳐졌다.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봤다. 내가 바랐던 것은 정말 온전한 나의 바람이었을까. 아니었다. 그저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그들이 가진 것들은 나도 가지기를, 그들이 해보는 것은 나도 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의 바람은 타인의 욕망을 베낀 것일 뿐이었다.


이제야 진짜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진짜 바란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계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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