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는 서른넷이 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 나이 서른넷. 문득 친척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아직은 혼자 있어도 괜찮은데 서른넷 지나면 결혼하기 너무 힘들다. 그러니 누구라도 만나라.
그런 말을 자주 들어와서인지 서른넷이 되었을 때,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기분이었다.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이미 되어버린 걸 어쩌라고. 가는 시간을 내가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친척 어른들은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여자가 너무 많이 배우면 오히려 결혼할 때 걸림돌이 된다고 했었다. 여자는 그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사랑받고 사는 것이 최고라고 하기도 했다. 서른이 넘어서면서부터 나를 대하는 어른들의 관심사는 오직 '결혼'이었다.
서른넷. 어른들이 정한 최후의 한계선. 나는 이제 막 그 지점을 넘어섰다. 막상 불안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2019년을 잘 버텨낸 나 자신이 애틋하고 대견할 뿐이다.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은 2019년이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하찮은 한 해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치열한 한 해를 보냈다 자부한다.
-그럼 그렇지.
-내 인생이 이렇지 뭐.
-역시 안되네.
-내 주제에 무슨.
습관적으로 나 스스로에게 해 오던 이런 생각들을 고쳐나가기 위해, 무작정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일 년을 보냈다. 자학의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며 보낸 일 년을 떠올리자 지금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있다는 것이 벅찼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지점에 비로소 도달한 느낌이다.
작년 겨울, 밖으로 나올 힘조차 없어서 집 안에만 있었다. 억지로 버텼던 그 날들을 지나, 치열하게 나를 돌보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올해 내가 본 새해 첫날의 일출은 뜻깊었다. 억지로 쥐어짜 내지 않아도 힘이 난다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벅찼다.
구름에 가렸지만 태양은 태양인지라 그 빛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이 삶에 태어난 이유 역시 이런 것이지 않을까. 남들 눈에 분명하거나 선명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아도 나만의 색으로 빛을 내는 것.
서른넷의 나는 스스로에게 충만한 2020년을 보내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