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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Jan 29. 2020

스치듯 가볍게

가끔 습관처럼 내가 누군가의 뒷모습만 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중 한 명이 반 전체를 생일파티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모두 들뜬 마음으로 운동장에서 그 친구를 기다렸고 다 같이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초대받았다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반에서 친한 친구도 없던 터라 나를 초대해 줬다는 사실 만으로 행복했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운동장으로 갔더니 친구들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초대장에 적힌 주소로 무작정 찾아갔다. 다행히 그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초대장을 들이밀며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어른들은 대부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 어른들의 눈에는 친구 생일파티를 찾아가는 내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찾아간 그 집에서는 이미 생일파티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날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제야 나를 떠올렸다는 듯이. 하지만 늦게 도착한 내가 김밥을 먹는 동안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지? 눈치도 없다.’    


그제야 알았다. 아, 일부러 내가 화장실 간 사이 우르르 출발한 거구나. 그 이후의 시간은 가시방석이었다. 일찍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어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일파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생일파티 내내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는 없었고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애써 잊으려 했지만 나를 보고 했던 말들이 잊히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몇 번 비슷한 일을 당했고 내가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외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가야 했다. 학교에 가서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집에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내 일과의 전부였다.  

  

유년기를 외롭게 보낸 이후로, 성인이 된 나는 과하게 밝은 척하거나 억지로 긍정적인 사람인척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 곁에 남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숨기면서 만난 관계는 당연히 유지될 수 없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들을 내 옆에 묶어두고 싶어서 그들이 원하는 사람인척 했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는 더더욱.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서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인척 하는 관계는 결국은 좋지 않게 끝났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단단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손을 나도 잡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내가 좋은 사람일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지금에 와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이 맞잡은 손은 생각보다 헐거웠다. 아주 굳세 보이는 관계마저 사소한 이유로 쉽게 틀어졌고 그들 중에는 나와 같이 잡은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와 굳세게 손을 잡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스치듯 가볍게 잡은 손이라도 마주 보고 웃을 여유를 가진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은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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