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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Mar 03. 2020

가족사진

 가끔 어릴 때의 앨범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은 사촌 언니와 찍은 사진이다. 사촌 언니가 어린 나에게 뽀뽀를 해 주는 사진. 어린 나는 멜빵바지를 입고 있고 머리칼이 짧다. 볼이 통통하다. 누가 봐도 그 모습은 사랑스러운 아기의 모습이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주 많은 사랑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 가족에게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받았던 순간을 기억해내고 싶다는 것은 이후의 삶에서 사랑을 거의 느끼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기와 관련한 감정의 대부분은 불안과 우울이다. 


 할머니와 부모님, 나와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던 집은 14평짜리 주공아파트였다. 방 2개에 거실 1개, 화장실 1개가 있던 집. 어릴 때는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나는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의 방에서는 마음껏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할머니와 나는 주로 누워 있거나 같이 이야기를 했다. 때론 화투를 치기도 했다.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분들이 치던 화투에 나도 저절로 관심 갖게 된 것이었는데 비슷한 모양을 찾아내고 점수를 계산하는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던 다른 이유는 아빠 때문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빠는 나에게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뜻대로 삶이 풀리지 않았던 아빠는 어느 순간 늘 지쳐있고 말이 거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엄마와 종종 싸웠고 늘 큰소리를 쳤다.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나에게 공부는 했냐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 뒤에 숨었다. 할머니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일을 나가지 않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나는 작은방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아빠는 기분이 내킬 때면 독후감을 쓰게 하고 검사를 하기도 했고 문제집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의 의지는 얼마 가지 못했다. 며칠 못가 검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술을 마시거나 일을 알아보러 다녔다. 술에 취한 아빠는 가끔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 눈물이 부담스러웠다. 다가가서 위로를 하기에는 위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그 눈물을 보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얼른 이 상황이 지나기만을 바랐다. 


 사실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건설일을 하는 아빠가 먼 곳에서 일하게 돼서 집에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내가 어릴 때 아빠가 나를 정말 예뻐했었다고. 아주 작았던 나를 배 위에 올려 두고 재우기도 했고 입이 짧은 나를 위해 뭐든 만들어 먹이는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아빠의 피곤하고 지친 인생에 덧붙여진 짐이라 여겼다. 가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나는 아빠를 증오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때의 감정은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나에게 공부를 강요했다는 이유로, 돈을 벌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빠를 미워해도 되는 것일까. 엄마의 말대로 아빠는 어릴 때의 나를 아주 많이 예뻐했을 텐데.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믿을 수 있다. 내가 아주 많이 사랑받았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그때가 기억나지 않아서 억지로 믿어야만 했다. 내가 사랑받는 아이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성인이 된 후, 한 친구가 지갑 속에 가족사진을 넣어 다니는 것을 봤다. 단란한 네 식구의 모습이었다.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집에 가서 어릴 때 경주에서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찾았다. 나와 동생이 앞에 서 있고 아빠와 엄마가 뒤에서 우리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넣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만큼은, 나 역시도 보통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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