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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Apr 12. 2021

독립 일기(1)

진짜 독립의 시작

스무 살이 되면서 본가에서 나와 살았으니 나는 일찍 독립을 했다 생각했다

독립이 별건가. 본가에서 나와 살면 독립이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서 혼자 사는 것이 '진짜 독립'은 아니다.

그걸 알게 된 것은 최근에 진짜 독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였다. 

20대 내내 본가에서 독립해서 살면서도 나는 마음 기댈 곳을 찾았다. 

부모에게 정서적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나를 아이처럼 돌봐줄, 내가 마음껏 징징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바랐다.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은 잠시 공허함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지만 혼자 남겨진 순간, 감정은 늘 나를 압도했다. 도대체 혼자서도 외롭지 않다는 사람들은 뭘까. 그건 다 거짓말일 거야. 아니, 어쩌면 나만 이렇게 공허하고 외로운 걸까. 나는 왜 혼자 있는 순간이 이렇게 견디기 힘들까. 혼자 있을 때면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본가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을 테니까. 본가에서 부모와 함께 살아온 순간도 생각해 보면 다른 의미로 외로웠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이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 데서 오는 고립감을 느꼈다. 나와 살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혼자 있는 것도 그만큼 힘들고 외로운 일일 줄은 몰랐다.     


나는 버티기를 택했다. 혼자서 월세를 내고 세금을 내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고, 어쨌든 나는 내 방에서 먹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 앞에서 무력했고 매일 무거워만지는 마음을 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매일이 두렵고 공허하고 불안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모두가 친한 친구 한 둘 쯤은 있던데. 외롭다고 하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슬플 때 같이 울어주던 친구가 있던데. 나는 왜 힘든 일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는 걸까. 내 인생은 엉망인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독립해서 사는 동안, 많은 실패를 겪었다. 그토록 목메던 연애도 실패했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친구들과 비교하며 그들과도 멀어졌다. 

인생에서 최악이다 싶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살던 집은 오래된 오피스텔이었다. 북향이라 해가 잘 들지 않았고 겨울이면 추워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였다. 

    

30대가 된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파트에 번듯한 신혼집을 차렸고 그들의 삶의 형태는 약속이나 한 듯 비슷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사랑에 최선을 다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려 한 것 같은데 어째서 내게는 저런 빛나는 순간이 오지 않는 것인지. '빛나는 순간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오지 않는 순간을 그리워하면서도 내려놓은 척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기도 했다.

     

삼십 대 중반이 된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빛나는 순간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내가 그런 순간을 만들면 되지 않나? 

어쩌면 내 삶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빛나는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주변 사람들의 말이 내 삶을 만들었다. 

20대에 직장인이 되었을 무렵부터 어른들은 말했다.


결혼자금을 모아야지.

혼자 살면서 더 넓은 집이 왜 필요해? 이 정도면 됐지.

혼자 살 땐 싼 걸로 대충 살고 결혼해서 좋은 거 사.

일단 돈은 아껴야지.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 지금 이 순간, 내게 더 나은 것을 누리게 해 줄 수도 있잖아.

굳이 내 것이 아닌 기준에 내 삶을 맡길 이유가 없잖아. 

     

그렇게 나의 ‘진짜 독립’은 시작됐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여행과 물건에 돈을 쓰던 20대 때와는 달리, 30대 중반의 나는 오롯이 나의 만족을 위해, 진짜 독립을 위해 나의 시간과 돈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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