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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Apr 13. 2021

독립 일기(2)

혼자 살아도공간 분리가필요하다.

‘공간 분리’가 왜 사치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내 방을 갖지 못하고 살아와서 그럴 수도 있고, 공간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월세가 비싸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4년을 살았던 북향의 오피스텔은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게는 정말 최악이었다. 해도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처음 그 공간을 선택했던 이유는 그나마 작은 쪽방이 있어 짐을 한 군데 몰아넣을 수 있고 무엇보다 같은 구조의 오피스텔 대비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다.


혼자 살면서 주거비를 줄여 나중에 진짜 살 집을 장만하는 게 낫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그 정도 가격에 공간 분리가 되어 있다니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계약을 한 것이었다.    


큰 원룸에 문 하나 달아둔 것을 ‘공간 분리’라고 감지덕지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가련하기까지 하다.     

‘진짜 더 이상은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떤 결정적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반복되는 겨울의 추위에 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었고 켜켜이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때마침 직장도 옮겨야 했으니 근처의 집을 찾아보기로 하고 발품을 팔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집은 없으니 절충을 해야 했다. 적당히 만족시키는 집보다는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채워주는 집을 찾기로 했다. 나의 우선순위는 일조량과 공간 분리였다. 아, 이번엔 진짜 부엌, 거실, 방이 명확히 이름값 하게 분리된 공간 분리를 원했다.


여자 혼자 사니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넓은 집보다 효율적으로 돈을 아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혼자 큰 집 유지하기는 힘들다, 이사비용도 만만찮게 든다 등등 사람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공통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하지만 4년 동안의 고통을 거울삼아 배운 한 가지가 있다면 이 집은 타인이 아닌 내가 살 집이라는 것이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조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조건에 일치하는 집을 찾아 살게 되었다. 보증금이 원래 살던 집보다 비싸 대출을 얻어야 했고 월세가 조금 더 나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일조량과 공간 분리가 완벽하니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혼자 살기엔 넓어서 청소도 힘들고 유지하기도 힘들 거라는 말과 달리, 막상 내가 아끼는 공간이 생기자 나는 저절로 부지런해졌다. 청소도 열심히 하게 되고 나름 살림살이도 장만해 차곡차곡 정리하는 즐거움도 알게 됐다.   

 

막상 해보니 큰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큰 일인 것처럼 굴었을까.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두려워했을까.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며 버텼던 4년의 시간 덕분인지 나는 내 취향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아마 그때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내가 집을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만족할 수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더 확실히 알게 된 것은 타인의 기준에 겁먹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막상 내게는 그게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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