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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05. 2023

나의 난소생존기(3)

최악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것

 수술 중 실시한 간이 검사에서 왼쪽 난소의 혹은 경계성종양으로 판정되었고 왼쪽 난소와 나팔관, 대망이 절제되었다. 내 최악의 가정은 네 가지였다. 


 1. 개복수술을 해서 흉터가 크게 남는 것

 2. 왼쪽 난소가 절제되는 것

 3. 수술 중 응급 상황이 발생하는 것

 4. 조직검사 결과 경계성종양보다 더 좋지 않은 종양일 경우


 마취에서 깨어난 후, 이 중 두 가지가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개복수술의 흉터는 배꼽 아래로 약 13cm 정도였고 선명하게 수술의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왼쪽 난소는 경계성종양과 함께 절제되었다. 최악의 상상 두 가지가 이루어졌지만 생각보다 마음 아프진 않았다. 정말 경계성종양이고 이 정도로 끝난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조직검사 결과만 기다렸다.


 일주일 후, 정확한 조직검사 결과지가 도착했다. 종양은 경계성종양이 맞지만 워낙 오래되어 안에 있던 암세포가 복강 쪽으로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할 말을 이어했다.


 "항암 6회 정도 예상되니 휴직을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호르몬 치료도 병행해야 합니다."


항암이라니! 항암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쓰라린 공포감에 나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엄마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숨을 골랐다. 의사 선생님이 병실 침대의 커튼을 쳐주고 나가셨다. 수술 부위의 상처가 더 쓰렸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운 없고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신마취를 세 번 했고, 그중 두 번째 수술은 중단되어 개복수술을 해야 했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암환자가 되었다.  

 아, 이렇게 네 번째 최악의 상상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경계성종양은 양성 종양이 악성종양으로 가는 중간 단계의 종양이 아니다. 경계성종양은 이미 양성과 악성의 성질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일찍 발견할 경우 그 주변 조직만 제거하고 추적검사를 받으면 되지만 나처럼 늦게 발견할 경우 당연히 전이되기도 한다. 병기는 전이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난소에만 머물러 있으면 1기, 나팔관까지 전이된 경우 2기, 복강까지 전이된 경우 3기, 폐나 간과 같은 복강 외 장기까지 전이된 경우 4기가 된다. 나의 경우에는 복강 내의 대망, 방광 벽 등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되었으니 3기였다. 경계성종양 안에 있던 암세포의 종류가 저등급 장액성 암세포였고 그에 따라 진단명은 저등급 장액성 난소암 3기였다.


 다행히도 시작이 경계성종양에서 시작했고 수술 전 PET CT상에도 주변 장기로의 전이는 보이지 않았던 덕에, 그리고 흔한 고등급 장액성 난소암이 아니라 저등급 장액성 난소암이니 예후는 낙관적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6번의 항암과 호르몬 치료 후 추적 관찰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경고를 잊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병원에서 정해진 치료를 열심히 할 뿐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환자 스스로도 식습관,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원인이 될만한 요소는 고쳐야 합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냉정하고 차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환자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분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덩달아 냉정하고 차분하게 나를 돌아봤다. 사실 그의 말을 듣기 전에는 억울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불쑥불쑥 눈물이 났고 자꾸 화가 났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라는 식의 믿음으로 몸을 돌보지 않아 놓고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왜 나만 이러냐고 화를 낼 순 없는 일이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내 식습관은 엉망이었고 생활 습관도 좋지는 않았다. 배달음식, 차가운 음료를 달고 살았고 낮밤도 바뀌다시피 했다.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보니 경계성종양이 생기는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스트레스나 식습관은 물론이고 이른 초경과 늦은 폐경, 출산 경험 없는 것 역시 원인이었다. 쉴 틈 없이 과도한 호르몬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결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발병률을 높이는 원인이 될 뿐이다. 나의 경우에는 식습관과 생활습관, 호르몬 모든 것에서 발병률이 높은 케이스였다. 초경도 일렀고 30대 후반 미혼이며 출산 경험도 없다. 내 난소는 쉴 틈 없이 일했는데 영양 상태도 엉망이고 늘 피로와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태였던 것이다. 사라진 왼쪽 난소에게 미안했다. 평생 일만 하다 잘려나가 버린 셈이니.


 월경을 할 때의 호르몬을 멈추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장기적인 피임약 복용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고 한다. 아. 이쯤 되니 남은 한쪽 난소를 지키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성호르몬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자제해야 하고 정기 검진을 통해 혹시나 또 종양이 생기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홀대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나는 남은 난소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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