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일상은 굴러갑디다, 더 단단해졌을 뿐
아산병원 초진날짜를 잡는 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매일매일이 정보와의 싸움이었다.
오늘 아빠 기저귀는 갈았나? 세끼 다 챙겨 먹었나? 로 새벽 6시 30분부터 하루가 시작됐다.
아빠를 엄마 그리고 삼남매가 돌아가면서 케어했다.
기존에 아빠가 문을 열던 가게도 엄마가 대신해서 운영하기 시작했고, 언니와 나 모두 회사도 정상적으로 출근하면서 아빠를 돌보는 일상은 지속됐다.
우리는 간병인을 쓰지 않고 삼남매 그리고 엄마가 교대로 병간호를 했다. 간병인은 사람에 따라 서비스가 천차만별이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 평일 주간 1(8시 ~ 9시) : 나
- 평일 주간 2 (9시 ~17시) : 동생
- 평일 주간 3 (17시~ 19시) : 언니
- 평일 야간 1(19시 ~ 익일 08시) : 엄마
- 주말 주간 (09시~ 18시) : 나 또는 언니
- 주말 야간 (18시 ~ 익일 09시) : 엄마 또는 동생
밤에는 병원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다.
아빠가 낙상위험도 있고, 대소변을 혼자 볼 수 없으니 보호자 주의가 더 필요하다. 다인실이라 불편한 건 논 외로 치고 잠을 편하게 못 자니 힘들다.
아빠가 목포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엄마와 동생 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동생은 올해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아빠의 병간호에 올인한다고 했다. 고마우면서도 동생의 미래에 오늘의 일이 혹시나 후회할 일이 남을까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빠의 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각자가 단단해진 느낌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