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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케이크 Apr 26. 2019

불합격입니다

첫술에 어찌 배부르랴

대망의 날이 밝았습니다.


혹시 모를 합격에 대비해 무려 연차를 쓰고 목욕재계를 했다. 이렇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5년전 첫 필기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그 날이 생각났다.


여느 출근하는 날처럼 똑같이 일어나 책을 주섬주섬 들고 집 앞 카페로 갔다. 마침 오늘이 월급날이었기에 이러저리 이체를 하고, 지난달 생각보다 많이 썼구나-라는 나름의 반성도 했다.

한국사 인강을 듣다가 필기하는게 귀찮아서 오빠가 준 한국사 노트에 밑줄만 긋기 시작했다. 진작 이 방법을 쓸걸 왜 글씨도 못쓰면서 받아쓰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티비를 봤다. 오전에 나올것만 같았던 결과가 아직도 나오지 않은 걸 보고, 새로고침을 몇십번을 했다.

사실 기대하면 안되는데, 왜 기대하는지 나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사 인강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신입행원 연수 영상을 봤다. 나 역시 누군가가 정말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신입사원의 열정을 되찾고 싶으면 그들의 영상을 보면 되는데 말이다.

자꾸 기대하게 되는게 정신병 초기 증상인 듯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신났다. 그날만은 찍신이 강림해 내게 와주었으면 하는 바람때문이었을까?


요새 안하던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컴퓨터 액정이 나갔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고쳐야했으나 집 근처에 없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계속 들고 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5시 34분! 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붙으면 월말인데 어쩌지

필기보다는 면접이 더 자신있으니까 어떻게 해볼까

공부를 그렇게 안했는데 붙은걸 보면 이 회사와 나는 인연일지도 몰라

나 다시 신입사원되는건가

이런 저런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면서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42점

내가 지원한 지역의 합격 컷이 59점이었던걸 보면 꽤나 저조한 점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시험에 이정도 점수면 나는 꽤나 만족한다. 취준은 정말 어렵고 쉽게 보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렇다고 회사에 애사심이 들었냐고? 그건 아니다. 그냥 내일 해야할 KPI 마감과 4월 실적 리뷰 그리고 5월 정책개요까지 다시금 리스트가 확 머릿속에 스쳤다.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대학교때와 같이 쇼핑을 하고 올리브영가서 이런저런 화장품 발라보면서 폭풍 쇼핑하고 또 먹으면서 놀았다. 집에 가는길에 친구가 말했다.

“그냥 지금 회사 다녀. 너 5년전에 지금처럼 그 회사 엄청 가고 싶어 했어. 나 그때 네 옆에서 봤잖아. 나도 너 꼭 붙었으면 했어.” 라고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너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그래”라고 했을텐데, 이 친구가 말하니까 진심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할까? 아니 이

회사가 문제가 아니다. 이 직무를 계속 할 수 있을까? 회사는 좋지만 직무가 맞지 않는 나, 직무를 바꿔달라고 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이 영업관리.

회사 안에서 직무이동이 빠를까 아니면 직무를 바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빠를까?


오랜만에 캠퍼스에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쇼핑을 하니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가고싶어했던 회사에 떨어졌을 때도 함께해줬던 친구였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왜 떨어졌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하소연 할때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던 그 친구였다.


어찌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으며, 노력없이 결실을 맺으려 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워지는 하루다.  조금 더 힘내서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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