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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Aug 25. 2020

엄마의 6개월간의 병원생활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우리 엄마는 몇 년 전 내가 학생일 때 암 수술을 받았었다. 아주 어려운 수술이라 성공을 장담할 수 없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사의 말에, 아빠와 나는 참 많이도 울었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우리 엄마는 강한 사람이다. 10시간의 수술을 이겨내고, 긴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엄마는 다시 일상으로, 아빠와 나에게로 돌아왔다. 하늘이 도우셨다고, 이제 살면서 다른 일에 욕심부리면서 살지 말자고 아빠와 다짐했었다.


 1년 전부터 엄마의 몸이 좋지 않았다. 어딘가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먹고 나면 소화가 되지 않고 배가 불룩 튀어나오기 일쑤였으며,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 누워있었다. 병원에 갔더니 장폐색이라더라.


 첫 번째 장폐색 수술을 받았다. 암 수술 때도 잘라내었던 소장과 대장 부위를 더 잘라내야만 했다. 첫 번째라고 얘기한 까닭은 이 수술 이후에도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고 회복을 위해 기다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와 달리 엄마의 상태는 수술 전보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준다는 신약도 써보았고, 운동만이 답이라는 말에 엄마는 하루 몇 시간을 병동을 돌아다니며 운동도 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


 엄마의 병실 사람들이 퇴원하고,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그것이 몇 번이나 반복될 동안 우리 엄마의 시간만 멈춘 듯 그대로였다. 아빠와 나는 번갈아가며 이틀에 한 번씩 병원을 들렀고, 엄마에게 다 잘 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도 무서웠다. 처음 입원했을 때와 계절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아빠와 나의 시간도 멈춘 듯했다.


 5개월째,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이번 수술 후에도 차도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빠와 나는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수술 말고는 답이 없어 보였다.


 우리 엄마는 정말 강한 사람이다. 다행히 두 번째 수술 후, 엄마의 상태는 크게 좋아졌고, 그 후 몇 주의 입원을 더 한 뒤 며칠 전 퇴원하였다.


 아빠와 조촐한 퇴원 파티를 준비했다.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하던 엄마의 업무용 방을 엄마를 위한 서재로 만들었다. 낮은 좌식 테이블을 버리고, 쌓여있던 업무용 파일들을 정리해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하얀 원형 테이블과 라탄 의자를, 새로 산 보드라운 러그 위에 올리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수국을 화병에 꽂아 두었다. 엄마의 퇴원 날 방을 열어 보여주었다. 우와 하며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건 최근에 있었던 가장 행복한 일 중에 하나였다.



 해 질 무렵 혼자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집에 이제 차도 있고, 자전거도 있지만 나는 그중에 걷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걸을 때면 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탈 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긋나긋 흘러가는 구름이 보여주는 시간과

눈으로 열심히 잠자리를 좇는 귀여운 고양이와 같은 것들.


 별다른 걱정 없이 그저 부는 바람과 쬐는 햇빛을 느끼며 오늘 바람이 좀 불어도 햇빛이 내리쬐어서 좀 덥구나, 하면서 산책을 하는 것이 너무도 그리웠다. 엄마가 퇴원하고 나니 6개월 동안 늘 마음 한편에 뚫려있던 구멍이 드디어 매워진 것 같다.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느덧 20대 중반이 된 나는, 아무 발전도 없이 시간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종종 걱정한다. 그래도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간을 흘려보냈더라도, 그저 잘 흘려보냈으면 되는 거라고. 흘려보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아프고 괴로운 날들을 최선을 다해서 흘려보냈다.


 

 엄마의 입원 전 함께 심었던 작은 방울토마토가 이제 다 자라고 활력을 잃어 마지막 토마토를 수확하고 가지를 잘라내었다. 그래도 엄마에게 토마토를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식물이 싹을 내리고 키가 크고 꽃이 피고 여러 번 열매를 맺는 동안 우리 가족의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엄마가 오고 함께 소원을 빌고 케익의 초를 껐다. 어릴 땐 초를 끌 때면 올해는 저희 가족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었다. 며칠 전에는 나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소원을 빌고 초를 끄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봤다.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게 내 소원이다.


  요즘 올해 들어 가장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는 중이다.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던 평온한 일상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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